‘괴짜 총장’ 이광형 KAIST 총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아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의사과학자 양성 의지를 피력했다. 이광형 총장은 “연구중심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인류의 건강 문제를 해결할 의사과학자와 바이오 경제를 선도할 창업가를 키워낼 과기의전원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관련 법 개정, 정원 배정, 대학 설립 인가, 예비인증 등을 차례로 해나가며 바이오의료 시대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1990년대 전산학과 교수 시절 김정주(넥슨)·김영달(아이디스)·신승우(네오위즈)·김준환(올라웍스) 등 1세대 벤처 창업가들을 배출해 ‘KAIST 벤처 창업의 대부’로도 불린다. 2001년 바이오와 ICT 융합을 주장하며 바이오뇌공학과를 설립하고, 2009년에는 지식재산대학원과 과학저널리즘대학원을, 2013년에는 미래학 연구기관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설립을 주도해 미래를 앞서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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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가 과기의전원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의사과학자를 키워내야 한다는 대내외적 필요성 때문이다. 의사과학자는 연구자의 역량을 갖춰 신약이나 의료기기를 개발할 수 있는 인재를 뜻한다. 최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40%, 미국국립보건원(NIH) 기관장의 70%가 의사과학자다. 코로나19 대응,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발전에 따라 연구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KAIST는 현재 운영하는 의과학대학원을 우선 확대한뒤 2026년께 과기의전원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과기의전원에는 생물학과, 기계공학과 등 이공계열 학생들을 유치하고, 과학기술의학융합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의학과 공학(인공지능·바이오·물리)를 배우는 석사를 4년 동안 이수한 뒤 공학박사를 4년 동안 이수해 총 8년에 거친 교육으로 임상의학, 융합의학, 의학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졸업뒤 10년 동안 개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도 해서 의사과학자의 졸업 후 이탈도 막을 예정이다.
이 총장은 “현재 의사들이 와서 공부하는 곳인 의과학대학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졸업생 대부분이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나이도 많아 연구에 대한 흥미를 갖기 어렵다”며 “과기의전원으로 전환해 기존 의대와 다른 형태로 운영해 의학, 공학을 아우르는 새로운 교육체계 속에 인재를 길러 내고, 디지털헬스케어 관련 실험 등을 해나갈 부속병원의 점진적인 설립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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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KAIST뿐만 아니라 포항공과대학교, 울산과학기술원 등 과학기술특성화대학들은 의사과학자 양성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과학기술계와 의료계 전문가로 구성된 ‘의사과학자 양성협의회’ 운영을 시작했다. 황판식 과기부 미래인재정책국장은 “의사과학자를 키워내야 한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있었다”면서도 “코로나19 확산 등에 따라 의사과학자 양성이 다시 주목받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의료계 설득 작업이 의사 과학자 양성에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기존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후 연구계로 돌아오지 않는 원인분석부터 의사과학자 처우 개선, 인프라 조성 등이 먼저라고 보고 있는 만큼 정치적, 기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솔직히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며 “그동안 의학전문대학원을 비롯한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기초연구자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계 특성상 병원에서 임상을 중시할 수밖에 없고, 연구를 임상과 떨어뜨려서 생각하기도 어렵다”며 “의과학자들이 과학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기반 조성 등 환경 개선 없이 자칫 의사 자격증을 남발해 임상 의사만 늘리는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