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이슈 블랙홀된 '여가부 폐지'…성평등정책 뒷걸음

여가부 출범 20년…명칭 3번 바뀌고, 복지부 통폐합 위기도
윤 당선인, 새부처 신설 및 여가부 조직 타부처 이관
부처 이관시 젠더 이슈, 우선순위 밀려 위축 불가피 우려
  • 등록 2022-03-10 오전 10:57:34

    수정 2022-03-10 오후 8:34:19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제20대 대통령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0일 당선됨에 따라 여성가족부가 출범 20년만에 폐지될 신세에 처했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적 성향을 드러낸 20대 남성 표심을 붙잡기 위해 ‘여가부 폐지’라는 공약이 나왔지만, 공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고 갑작스럽게 제기된 만큼 여가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 사진=이데일리
◇출범 20년 여가부…정권마다 수술 시험대


여성가족부는 출범 20년 동안 3번의 부처명 변경과 통폐합 위기를 거쳐 현재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고용노동부의 여성 주거와 고용, 보건복지부의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보호 등의 기능을 넘겨받아 여성부를 신설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복지부의 가족정책 기능을 넘겨받아 여성가족부로 개편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여가부 폐지 공약에 따라 복지부에 통폐합될 위기에 처했으나, 여성계의 반발로 2008년 가족 및 보육정책을 다시 복지부로 떼주며 여성부로 축소, 이후 2년 뒤 다시 복지부 청소년·가족기능을 다시 가져와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해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여성부는 이같은 조직변천사를 거치며 성평등·청년·가족 문제에 대한 부처간 조정기능과 정책 집행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젠더이슈와 관련해 독립부처로 존재하면서 여가부는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성평등 관련 업무를 추진하고, 여성의 인권과 폭력 문제에 대한 국가정책적 의제화를 기획·실행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부처의 낮은 위상과 영향력, 성차별 시정을 위한 정책수단 부재 등으로 여가부는 젠더 문제 해소에 한계를 드러내 성평등 정책의 전반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숱하게 반복됐던 문제인 만큼 여가부 내에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여가부 한 관계자는 “정권 교체기마다 여가부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꾸준히 제기돼왔으나, 여가부가 해온 역할과 기능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 조직개편은 불가피할 듯…‘폐지’ 쉽지 않을수도

윤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여가부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부처를 신설하고, 여가부의 주요 조직을 다른 부처로 이관하는 방안도 동시에 언급된다.

조직개편 방안에 대한 윤곽이 불투명한 가운데, 여가부 폐지를 남성 표심공략을 위해 전면으로 내세운 만큼 어떤식으로든 조직개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가족정책은 독립기구 신설해 다뤄지고, 여성폭력 전반에 대한 업무를 담당해온 권익증진국은 법무부로 이관되는 등의 방안이 예상된다.

여가부 폐지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대남(20대 남성) ‘세대포위론’ 전략의 역풍으로 이대녀(20대 여성)의 표심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쏠린데다, 0.8%포인트 신승으로 당선되면서 여성계의 반발은 물론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과정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여성계는 당장 윤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 철폐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선거 기간 국민의힘과 당선인은 혐오선동, ‘젠더 갈등’이라는 퇴행적이고 허구적인 프레임을 선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며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높은 정권 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1%도 안 되는 아주 근소한 표 차로 제20대 대통령을 선출한 민심의 의미를 잘 헤아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존폐론에 소수자보호·성평등 정책 논의 함몰 우려

윤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으로 우리사회의 젠더 갈등이 심화하면서 여가부 존·폐 논란에 젠더 문제가 함몰될 우려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여성 등 소수자를 위한 정책은 물론 성평등 정책 전반의 후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다른 부처로 여가부의 업무가 이전될 경우 업무 우선순위에서 젠더 이슈는 위축될 가능성이 크고, 각 부처의 정책 조율과 보완 등에 컨트롤이 부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 한국사회는 젠더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인 정책을 발굴하고 성과를 내는 독립된 부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윤 당선인의 여성 정책 후퇴에 대한 여론을 재정비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고문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통합과 균형, 누구도 소외외거나 위험하지 않도록 이 안(국민의힘)에서도 꼭 소수를 대변하겠다”며 소수자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계속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영입 직후 윤 후보의 여성 및 소수자 정책에 대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백이 눈에 보였다”며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약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하자는 것이지, 인구 절반에만 유리한 정책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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