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휴대전화는 보관함에 넣어주세요. 지금부터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20일 서울 강남의 한 북카페. 이곳을 이용하려면 휴대전화를 반납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입장과 동시에 휴대전화 보관함에 넣어야 하고 카페 이용 중간에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용할 수 없다. 그게 이 카페의 ‘룰’이다.
| 서울 강남의 한 북카페 이용규칙(왼쪽)과 휴대폰 수거함(오른쪽)(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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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이나 태블릿 등 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다. 대신 각종 도서가 비치되어 있고, 무선 스탠드와 독서대, 메모장과 펜, 귀마개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독서에 최적화된 환경을 위해 커피 머신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미리 추출한 더치커피를 준다. 엄연히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사는 행위)으로 이용하는 것인데 불편할 법도 하지만, 요즘 MZ들 사이에선 ‘힐링’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카페 측은 “우리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를 통해 책 몰입과 영감 받기를 1순위 목표로 두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이 각종 전자기기의 사용을 중단하고 아날로그적 휴식을 취하는 방식을 뜻한다.
직원의 이같은 요구에 손님들은 순순히 스마트폰을 보관함에 집어넣었다. 자리에 앉은 뒤에는 책을 읽거나 메모장에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이 잠긴 모습이었다. 말소리라곤 음료 주문대에서 오가는 몇 마디가 전부였다.
이날 처음 카페를 방문했다는 20대 남성은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며 “원래는 한 번에 책 10페이지 읽는 것도 힘든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앉은 자리에서 책 1권을 다 읽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은 “카페를 이용하는 동안 혹시라도 긴급한 업무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신경이 쓰였다”며 “사우나에서 오래 버티기 하는 느낌으로 견뎠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휴대전화에 많이 길들어 있었구나 느꼈다”고 후기를 전했다.
| 서울 신촌의 ‘대화 금지’ 카페 입구 안내문(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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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또 다른 카페에서는 ‘대화’가 금지됐다. 자리에 앉자 건네준 안내문에는 ‘주문, 계산을 제외하고는 귓속말을 포함한 대화를 할 수 없다’는 문구와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달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사진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찍어달라는 당부 사항도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조용히 책 읽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옆자리 손님이 누구냐에 따라 그날의 카페가 천국이 되기도 지옥이 되기도 했다”며 “아주 오래 전부터 ‘침묵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직접 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MZ세대가 사회적 관계의 과잉으로 피로감을 느끼고 ‘휴대폰 금지’, ‘대화 금지’ 같은 이색 카페를 찾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욕구에 따라 혼자 있는 것보다 무리 짓거나 연결된 상태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며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온라인상에서 연결이 많이 됐고, 그게 너무 과해서 오히려 혼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겪으면서 자극과 떨어져 있는 경험을 해봤고 이후에도 인위적인 거리두기를 통해 휴식을 취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