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태풍 ‘난마돌’이 지나가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가을 날씨에 접어들고 있다. 가을이면 도심 곳곳에 심어진 은행나무가 노란빛으로 물들며 가을 정취를 뽐내는 한편, 고약한 악취를 일으키는 열매 때문에 해마다 많은 민원이 발생한다.
특히 보행로나 버스 정류장에 우수수 떨어진 열매를 자칫 밟기라도 하면 종일 악취를 달고 다녀야 한다. 끈끈한 점액질 때문에 휴지로 닦아내도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나무 중에서 하필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선택하는 걸까?
| 태풍에 우수수 은행나무 열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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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서울시 가로수는 총 30만5086주다. 가로수 종류는 총 19가지인데, 이 중 은행나무가 10만6205주로 전체의 35% 가량을 차지해 가장 많다. 뒤이어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5만9776주, 느티나무 3만7789주, 왕벚나무 3만5583주 등이 많았다.
은행나무가 유독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이유는 화재에 강해 ‘방화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 질이 많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불이 잘 붙지 않아 도시에서 발생하는 웬만한 화재가 확산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이에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가로수로 많이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은행나무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해 정화하는 능력이 좋고, 병충해에도 강해 관리에도 수월하다. 은행 열매의 냄새가 고약하기 때문에 동물들도 은행나무를 꺼려하는데다 잎에는 항균 성분이 많고 열매에는 독성이 있어 잎과 나무에 벌레가 꼬이지 않는다.
여기에 가을이면 잎이 노랗게 물들어 경관적으로도 아름다워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선정하고 있다.
서울시 및 자치구에서는 은행 열매로 인한 악취를 해소하기 위해 조기에 열매를 채취하거나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면 환경이 파괴된다거나 생태계에 교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은행나무는 벌이나 나비의 도움 없이 수정을 할 수 있어서 도시 안에 수나무만 배치해도 곤충이나 생태계에 큰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경관·도시환경 등 여러 요소 고려…“모든 면에서 좋은 나무는 없어”그렇다면 은행나무 외에 가로수는 산림청이 마련한 ‘가로수 조성·관리 지침서’에 따라서 각 자치단체장이 관리하도록 정하고 있다. 자치단체에서는 도로 안전 확보 및 쾌적한 보행환경 조성, 아름다운 가로경관 조성, 도시환경 개선, 생물다양성 증진 등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로수를 정하게 된다.
실제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쓰이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1980년 12월 말 기준 서울시 전체 가로수 중 가장 많은 나무는 플라타너스로 전체의 38%를 차지했다. 은행나무는 14%로 27%인 수양버들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플라타너스는 세계 4대 가로수에 들만큼 병충해에 강하고 미세먼지 저감 및 그늘 형성 등의 효과가 있어 가로수로 널리 쓰였다. 하지만 빠른 성장 속도에 20m 이상 자라고 잎이 넓어 고층 건물의 창문을 가린다는 민원이 잇따랐다. 게다가 가을청 낙엽이 많이 떨어지고 가로수의 미관을 중시하는 추세에 따라 2000년대 쯤 부터 다른 수종으로 교체하며 현재는 많이 사라져 은행나무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이 외에도 소나무와 벚나무 등이 경관에는 좋지만 가로수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소나무는 불에 잘 탈 뿐만 아니라 나무 그늘이 넓지 않고 병충해에 약하다. 벚나무 역시 꽃은 아름답지만 해충에 약하고 가지치기를 하면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모든 면에서 좋은 나무는 없다”며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가로수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짙은 녹음으로 우거진 용산공원 가로수길(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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