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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2008년, 한국 축구는 씁쓸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화려한 추억은 간데없이 “축구장에 물 채워라 박태환 수영하게” “얼려라. 연아 피겨 타게” 등등 조롱성 패러디의 대상이 됐다. 야구가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고 수영의 박태환과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가 한국 스포츠사에 한 획을 긋는 활약을 펼친데 비해 2008 베이징 올림픽 조별리그 탈락 등의 실패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 탓이었다.
하지만 축구, 그리고 축구인들 또한 나름의 고지를 향해 2008년 한해를 숨가쁘게 내달렸다. 희망을 찾아 한껏 솟아오른 이도 있고, 날개 없이 추락한 이들도 있었다. 또 1년 사이 롤러코스트를 타듯 오르막과 내리막을 모두 경험한 이도 있었다.
이데일리 SPN은 2008년 한국축구의 업 앤 다운(Up &Down)을 선수와 지도자로 나누어 되짚어 본다. 선수에 이어 지도자다.
▲Up: 차범근, 파리아스 감독...
2008년은 지도자 차범근(55)의 최고의 한해였다.
선수 차범근은 한국 축구 역대 최고라는 사실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지만 지도자로서는 아니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울산 현대 감독을 맡았으나 한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때는 본선 대회 도중 하차하는 아픔도 맛봤다. 수원 삼성 감독으로 K리그에 복귀한 2004년,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차 감독 스스로 “2004년에는 첫 해 감독이 돼서 어영부영 우승했다. 그래서 좋은 맛을 못 느꼈다”고 기억한다. 이후 3년간 번번이 정상 문턱에서 주저 앉았다. 와중에 지도력에 대한 의문도 뒤따랐다.
특히 올해의 성과는 의미가 컸다. 수원의 스쿼드야 늘 K리그 정상급으로 평가되지만 시즌 중 주전들이 줄부상으로 쓰러지는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달라진 지도자 차범근’의 역량까지 과시한 까닭이다. 주전들의 공백으로 찾아온 위기는 2군에서 기회를 기다리던 후보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것으로 극복했고, 선수들을 믿고 기다려 줄줄도 알았다.
차 감독은 FC 서울을 꺾고 챔피언에 오른 뒤 “감독으로서 공부를 많이 했던 한 해였다”며 “선수들과 교류하기 위해 마음을 많이 열었고, 대화도 많이 했다. 선수들 의견을 듣고 많이 존중해줬다. 선수들이 그런 믿음을 경기력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K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뒤에는 "나는 항상 최고였고 부러움의 대상이 돼 왔지만 올 한해 그것을 깨고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도 밝혔다. 진화한 것이다.
포항의 파리아스(41) 감독은 올해에도 ‘매직’을 부렸다. 비록 K리그에서는 지난 해 보였던 마법 같은 역전 우승을 이루진 못했지만 시즌을 마무리하는 FA컵을 제패, 지도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포항의 FA컵 우승은 1996년 원년 대회 이후 12년 만이었다. 이렇다할 스타는 없어도 학연과 지연, 이름값에 얽매이지 않는 용병술과 창의적이고 물러서지 않는 공격축구가 ‘파리아스 매직’의 핵심이다. FA컵 정상을 차지한 뒤 파리아스 감독은 “누구나 자유롭게 희망을 품고 꿈을 꿀 수 있다”면서 “하지만 목표를 이루려면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백전노장’ 김호(64) 대전 감독은 사상 첫 200승고지 등극이라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1984년 한일은행 사령탑으로 K리그에서 승수를 쌓기 시작한 김 감독은 지난 5월11일 부산을 2-1로 꺾고 감독으로선 처음으로 200승을 달성했다. ‘40년 지기이자 맞수' 김정남 울산 현대 감독(당시)을 제친 결과였다. 정규리그에서 3승12무11패로 13위에 그친 게 아쉽지만 김 감독은 팀을 재정비하는 내년 시즌에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203승150무172패를 기록중인 김 감독은 또 김정남 감독이 최근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남긴 K리그 통산 최다인 209승(168무153패) 기록도 내년 시즌 초반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허 감독은 11월 20일 가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3차전으로 단번에 살아났다. 한국 축구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중동 원정으로 치러진 사우디전서 한국은 이근호와 박주영의 연속골로 2-0으로 승리, 2승1무로 조 선두에 나서며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한국이 사우디를 누른 것은 1989년 10월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서 2-0으로 이긴 이후 19년만이었다. 허 감독을 두고 한때 제기되던 ‘중도사퇴론’이 쑥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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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박성화, 김학범 전 감독...
박성화(53)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올 한해를 빨리 보내고 싶은 지도자다. 지난 해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오를 때부터 논란을 빚었던 박 감독은 ‘사상 첫 메달 획득’을 호기롭게 외치고 출전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1승1무1패로 조 3위에 그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온두라스를 1-0으로 꺾었지만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에 0-3으로 참패한 게 컸다. 야구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박성화호’의 그늘은 더욱 짙어 보였다.
유망한 젊은 지장으로 꼽혔던 김학범(48) 전 성남 일화 감독도 우울했다. 성남을 한동안 정규리그 선두로 이끌기도 했지만 막판 부진의 늪에 빠지며 리그 3위에 그친데 이어 6강 플레이오프선 울산 현대에 패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스스로 사령탑에서 내려왔다. 계약 기간은 1년 더 남았지만 "오래전부터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재충전이 필요할 때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98년 성남 코치로 부임, 2001-2003년 성남의 K-리그 3연패를 일궈낸 숨은 공신으로 인정받은 김 감독은 2004년 12월 임시 사령탑으로 성남 지휘봉을 잡은 뒤 2005년 후기리그 1위, 2006년 K리그 우승, 2007년 정규리그 1위 등의 성과를 올렸지만 올 시즌 성적 부진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멤버 가운데 가장 먼저 K리그 사령탑에 오른 황선홍(40) 부산 감독은 2008년을 ‘시행착오’의 해로 규정한다. 5승7무14패에 그친 정규리그 성적 탓이다. K리그 막내 감독이자 '초보 감독'으로서 경험을 쌓은 한 해였다고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는 “성적만 보면 참담하다”고 토로한다. 한국 축구 간판 스트라이커로 각광받던 선수 시절의 명성이 지도자로서는 아직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 막판 강호 FC 서울을 2-0으로 잡는 등 부산의 매서움을 이끌어내는 가능성도 보였다. 황 감독은 “올 시즌 희망을 봤기에 내년을 준비한다”고 다짐했다. 2009년을 지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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