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뱅톱랭킹포인트로 살펴본 '스피드 배구', 한국에서 가능할까

  • 등록 2021-11-10 오후 4:42:34

    수정 2021-11-10 오후 5:09:45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지난 수년간 한국 배구의 최대 화두는 ‘스피드 배구’였다. 거의 모든 감독이 스피드배구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국제무대에선 10여년전부터 스피드를 강조한 배구가 뿌리 내린지 오래다.

사실 스피드배구는 한국에서 나온 용어다. 국내에선 스피드배구에 대한 해석도 서로 다르다. 어떤 지도자는 단순히 속공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 다른 지도자는 세터가 토스를 낮고 빠르게 올리는 것을 스피드배구라고 일컫는다.

스피드배구의 일반적인 정의는 ‘토탈배구’로 이해할 수 있다. 토탈배구는 코트에 있는 선수 가운데 선수 전원이 리시브와 공격에 가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런 로테이션은 빠르고 간결하게 이뤄져야 한다. 스피드가 동반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된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스피드배구 개념을 처음 정립한 인물은 베르나르두 헤젠지 전 브라질 대표팀 감독을 꼽는다. 2000년대 브라질 남자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헤젠지 감독은 공을 받으면 리시버 포함, 4명의 공격수가 빠르게 공격 준비에 돌입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대는 여러 명의 공격수가 한꺼번에 움직이니 블로킹을 어디로 떠야할지 혼란을 겪는다. 블로킹이 분산되거나 타이밍이 늦어지면 그만큼 공격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세터가 토스를 낮고 빠르게 올려준다면 스피드배구가 100% 완성된다.

그렇기에 세터의 역할이 강조된다. 세터는 리시브가 잘 이뤄진 공을 네트 앞에서 올려주는 개념을 넘어선다. 전 코트를 부지련히 뛰어다니면서 빠르고 강한 토스를 찔러줘야 한다. 웰컴저축은행 웰뱅톱랭킹으로 세터순위를 봤을 때 공격적인 기록 순위가 높은 KGC인삼공사의 염혜선(1위·421.4점), 현대건설의 김다인(2위·364점) 이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이 속한 팀 역시 각각 1, 2위를 달리고 있다.

한유미 KBSN 배구 해설위원은 “스피드배구는 우리 코트에서 공이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상대가 블로킹을 준비하기 전에 넘기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스피드배구는 낮은 배구가 아니라 높은 위치에서 공을 컨트롤 해야 한다”며 “첫 번째 공(리시브)을 어느정도 빠르게 올려주면 두 번째 토스하는 세터도 최대한 위에서 빠르게 줘야 상대 블로킹이나 수비가 정비되기 전에 공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남원 IBK기업은행 감독은 스피드배구의 핵심은 세터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피드배구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세터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세터가 언제 어디서든 낮고 빠르게 토스를 올려줘야 하는데 공끝이 죽어버리면 플레이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선수들의 기량과 운동능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한국 여자배구에서 스피드배구를 가장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감독은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이끈 스테파노 라바리니(이탈리아) 전 국가대표 감독이었다.

라바리니 감독은 2019년 부임 후 한국 여자배구의 기존 틀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리베로나 수비형 레프트가 리시브를 올리면 주공격수 한 두명에게 의존하던 스타일을 버리고자 했다. 대신 세터와 리베로를 제외한 4명의 공격수(레프트 2명, 라이트 1명, 센터 1명) 중 누구라도 공격에 나서도록 주문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우선 ‘월드스타’ 김연경의 공격 점유율을 낮췄다. 대신 김희진, 박정아, 정지윤 등의 공격 빈도를 높이면서 공격 방향을 다양화하려고 했다. 소속팀에서 센터로 주로 활약했던 김희진, 정지윤이 대표팀에서 라이트로 변신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이드에서 강한 공격을 책임질 선수가 필요했다. 김희진이나 정지윤은 센터로 뛸 때도 속공보다는 오픈 공격 비중이 큰 선수들이었다.

프로배구에서 스피드배구를 가장 강조했던 인물은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이다. 차상현 감독은 2016년 GS칼텍스 감독에 부임할 당시 “감독 인생을 걸고 스피드배구를 성공시키겠다”고 장담했다. 실제로 팀 공격의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외국인선수도 발이 빠른 선수를 뽑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프로에서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의 배구를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외국인선수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런데 그 선수를 뽑는 방법이 자유계약이 아닌 드래프트다 보니 스타일에 맞는 선수를 데려오기 어렵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우선 기량이 좋은 선수를 선택한 뒤 그 선수에 맞는 팀플레이를 만들 수밖에 없다.

차상현 감독도 드래프트에서 스피드와는 거리가 먼 206cm 장신 메레타 러츠를 선택했다. 결국 그와 함께 2020~21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본인이 추구하려 했던 스피드배구와 현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차상현 감독은 “스피드배구라는 것이 한 번에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며 “어느 정도 같은 구성원을 가지고 끌고 갈 수 있어야 하는데 트레이드나 FA 이적 등 변화가 많다 보니 뭘 만들려고 하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국내 프로리그는 외국인 선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수에 맞게 팀 컬러가 바뀌는 것 같다”면서 “그래도 (스피드배구를 추구하려는)팀의 색깔이나 에너지는 확실히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스피드배구를 플레이어 전원이 공격에 가담하는 토탈배구로 이해할때 그 기준에 가장 근접한 팀은 KGC인삼공사다. 이는 웰컴저축은행 웰뱅톱랭킹 포인트 순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1월 8일 기준으로 KGC인삼공사는 톱랭킹 포인트 20위 안에 가장 많은 4명을 올려놓고 있다. 5위 안에 옐레나(4위. 621점)와 이소영(5위. 584.4점) 등 2명이나 포함돼 있다. 박혜민도 14위(386.6점)에 자리하고 있다. 웰뱅톱랭킹 포인트 20위 안에 공격수 3명이 올라있는 팀은 KGC인삼공사와 IBK기업은행(10위 표승주, 11위 라셈, 18위 김주향) 두 팀뿐이다.

KGC인삼공사는 스피드배구의 중심 플레이인 속공이나 퀵오픈 활용도도 높다. 퀵오픈은 199개로 7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이 시도했다. 성공 횟수도 94회로 흥국생명과 다음으로 많다. 성공률 자체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속공 시도도 66개로 현대건설(81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후위공격 시도도 111개로 흥국생명(129개), 페퍼저축은행(118개)에 이어 3위다. 지난 시즌 장신 외국인 공격수 발렌티나 디우프의 오픈 공격에 의존했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더 주목할 부분은 세터 염혜선의 기록이다. 염혜선은 웰컴저축은행 웰뱅톱랭킹 포인트 순위에서 세터 가운데 높은 12위(421.4점)다. 이번 시즌 세트 시도(665개)와 성공개수(271개) 모두 월등히 1위를 달리고 있다. KGC인삼공사가 펼치는 다양한 공격 플레이 중심에 염혜선이 확실히 자리잡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단순 기록으로 스피드배구 또는 토탈배구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단순히 참고자료일 뿐이다. 하지만 톱랭킹포인트를 통해 선수들의 활약이 고르게 분포돼 있다는 점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스피드배구를 한국에서 완성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 하지만 결국 한국 배구가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흐름에 뒤처져선 안된다. 단순히 한 지도자 개인이나 팀에 의존하기 보다는 한국 배구 전체가 큰 틀에서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웰컴저축은행 웰뱅톱랭킹’은 야구, 배구, 당구의 종목별 공식기록을 바탕으로 선수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신개념 선수 평가 시스템이며, 포지션 부문 랭킹 차트는 물론이고, 선수 개개인의 점수 현황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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