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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의 ‘노쇼’에 국내 축구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 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 축구팬들은 2007년 이후 12년 만에 방한하는 호날두가 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관중석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호날두는 끝내 출전하지 않았고 팬들은 실망감에 야유를 쏟아냈다.
경기가 끝난 뒤 유벤투스는 곧바로 밤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노쇼’ 파문은 꺼질 줄 모르고 있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유벤투스는 물론 주최사와 프로축구연맹에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의 쟁점들을 살펴본다.
△주최사는 정말 ‘호날두 노쇼’ 몰랐나
주최사인 더페스타의 로빈 장 대표는 27일 공식 사과문을 통해 “유벤투스로부터 출전선수 엔트리 명단을 전달받은 시점까지도 호날두가 부상이나 특정 사유로 출전을 하지 못한다는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호날두가 뛰지 못한다는 사실을 후반전 10분이 지나서야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며 “이후 수차례 구단 관계자들에게 호날두 출전을 요청했지만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유벤투스의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다른 말을 했다. 그는 “호날두는 사실상 어제(25일) 거의 결장하는 게 결정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넘어오기 전 팀 미팅에서 호날두의 컨디션이 안좋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리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는 호날두의 모습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경기장에 등장한 호날두는 귀고리를 하고 있었다. 친선경기라 하더라도 경기에 나서는 선수는 귀고리나 반지 등 장신구를 착용할 수 없다. 후반전에라도 출전 계획이 있었다면 전반전에 가볍게라도 몸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호날두는 90분 내내 벤치에 앉아 마치 관중처럼 경기를 지켜봤다.
주최사는 “유벤투스와 체결한 계약서에 호날두가 최소 45분 이상 출전하기로 정확히 명시돼있다”고 주장했다. 경기 전 워밍업 때나 경기 중 부상을 당할 때만 예외로 인정하기로 했다. 주최사 설명이 사실이라면 유벤투스는 명백한 계약 위반을 한 것이다.
더구나 사리 감독의 말대로 유벤투스가 ‘호날두 노쇼’를 미리 결정하고도 주최사와 한국 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계약의 문제를 떠나 도의적으로 한국과 한국 팬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행태로밖에 볼 수 없다.
어쨌든 ‘호날두 45분 출전’을 광고 문구에 내걸고 값비싼 티켓을 판 당사자는 주최사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호날두 논란과 별개로 주최사는 이번 친선경기를 통해 티켓 판매, 광고 수입 등 최소 20~30억원의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벤투스에 책임 물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주최사가 유벤투스에 손해배상을 포함해 법적, 금전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한 축구 관계자는 “친선경기 계약을 맺을때 종종 특정 선수의 의무 출전 조항을 포함시키지만 강제성은 사실상 없다”며 “선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출전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주최사로선 반론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주최사인 더페스타는 유벤투스전의 계약서 원문 전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호날두와 관련된 일부 문장만 공식 사과문을 통해 밝혔다. 드러나지 않은 계약서 내용이 모두 공개된 뒤에야 유벤투스의 정확한 책임 범위가 가려질 전망이다.
만약 유벤투스의 전적인 책임이 드러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면 금액은 얼마나 될까. 유벤투스는 26일 오후 2시 넘어 입국해 다음날 새벽 2시 출국 때까지 한국에 약 12시간 머물면서 300만 달러(약 35억원)의 초청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유벤투스가 경기 약속을 아예 지키지 않았다면 초청료 전액은 물론 그 이상의 위약금까지 털어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어쨌든 한국에 와서 경기를 치렀다.
호날두가 유벤투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3000여 축구팬도 호날두를 보기 이해 빗속을 뚫고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정 선수의 출전에 대한 구체적인 위약금 액수나 조건을 명시했는지가 관건이다.
유벤투스가 이번 아시아 투어를 진행하면서 수천만 달러의 개런티를 챙겼다. 호날두가 벌어들이는 엄청난 수입을 감안하면 위약금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수준이다. 다만 주최사에 물어야 할 위약금과는 별개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입장료를 물고도 큰 상처를 입은 축구팬들이 보상을 받을 길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프로축구연맹은 책임이 없나
프로축구연맹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분명히 있다. 물론 이번 유벤투스 친선경기에서 프로축구연맹도 초청을 받은 쪽이다. ‘K리그 올스타’이라는 이름 대신 굳이 ‘팀 K리그’라는 이름을 쓴 것도 자신들이 직접 주최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연맹은 ‘희대의 사기극’를 방조한 셈이 됐다. 주최사인 더페스타가 대회 운영을 전적으로 맡았다고 하지만 K리그1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출전하는 이벤트다. 대전료도 연맹이 더페스타측에 지불하고 업무를 일임했다. 그렇다면 연맹이 사전에 일정이라던지 업무 추진 상황을 꼼꼼히 따졌어야 했다.
더구나 이번 사태가 벌어진데는 유벤투스의 무리한 일정이 컸다. 유벤투스가 당일 오후에 도착해 그날 저녁 경기를 하고 곧바로 떠나는 비현실적인 스케줄을 잡았을때 이미 시한폭탄을 떠안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맹이 이를 사전에 체크할 필요가 있었지만 주최사에만 맡기고 손을 놨다. 대회 운영을 맡은 더페스타는 이같은 거대한 이벤트를 치러본 적이 없는 신생업체였다.
이미 주최사의 불안한 행보는 경기 전부터 이어졌다. 과도하게 비싼 티켓 가격에 축구팬들의 불만이 높았지만 연맹은 그냥 방관했다. 지상파 중계 도중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가 A보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버젓이 중계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호날두 출전 여부와 상관없이 K리그로선 또다른 흑역사를 남긴 이벤트 경기였다.
권오갑 총재는 경기 이후 곧바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권 총재는 “많은 축구팬 여러분들의 기대를 저버린점에 대하여 다시한번 깊이 사과드립니다”며 “앞으로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K리그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몇 줄의 사과로 실망한 축구팬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유벤투스’라는 환상만 좇고 직접 일 처리를 확인하지 못한 후폭풍을 연맹이 제대로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