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영화는 살아있다, 올해 가장 뜨겁고 처절한 '서울의 봄' [봤어영]

전두환 12.12 사태 실화 조명…9시간의 비극 재구성
141분간 손에 땀을 쥐는 연출…구멍없는 열연 앙상블
실화의 무게와 별개로 대중성 훌륭…분노와 탄식 유발
파격 변신만큼 압도적인 황정민…정우성의 재발견
  • 등록 2023-11-10 오전 8:59:49

    수정 2023-11-10 오전 11:57:34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망해가던(누군가는 이미 망했다고 했던) 한국영화의 불씨와 희망을 이 영화에서 다시 발견했다. 손에 땀을 쥐는 연출, 열연으로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 허를 찌르는 대사. 삼위일체로 정성껏 빚어낸 141분 동안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역사를 바꿨던 비극적 하루, 9시간의 소용돌이로 우릴 소환한다. 큰 스크린으로 직접 목격하고 공명했으면 한다. 추운 겨울 관객들의 심장에 횃불을 피어올릴 가장 뜨겁고 처절한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의 운명을 두고 각자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작품으로,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외가 중심이 된 신군부 세력이 일으켰던 군사 반란 실화가 모티브다. 앞서 개봉 전 공개된 황정민의 파격적 연기 변신과 비주얼을 담은 스틸만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황정민 극 중 실제 인물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가상 인물, 보안사령관 ‘전두광’ 역을 맡았다.

영화는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시끌시끌해진 육군 조직 본부의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사조직 ‘하나회’의 리더인 보안사령관 ‘전두광’은 서거 사태 수사 책임자로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임한다.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후 그의 매스컴 영향력은 점점 높아지고 모든 정보들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하나회를 중심으로 군 조직 장악을 노리는 전두광의 욕망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하고,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상호(이성민 분)는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다. 정치에 뜻이 없는 군인 이태신(정우성 분)은 전두광과 달리 군인의 본분과 임무에 충실한 원칙주의자다. 정상호 총장은 이태신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함으로써 하나회의 권력을 견제한다. 합동수사본부를 해체하고, 하나회를 분리시키려는 정상호 총장의 움직임을 간파한 전두광은 권력 찬탈을 목표로 삼는다. 자신의 영향력이 큰 하나회 조직원들을 동원해 군 개편, 개각 전날인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다. 정상호 총장이 10월 26일 대통령을 암살한 피의자와 공모 관계라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강제 체포, 연행하는 작전을 펼친 것. 이태신은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국방장관과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않고 일어난 군사 반란을 막고 육군본부와 서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권력에 대한 탐욕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전두광은 하나회를 동원해 최전방을 지키던 공수부대까지 서울로 소집해 장악하려 한다. ‘아군’이었던 군 조직이 반란을 성공시키려는 하나회와 본부 및 서울을 지키려는 다른 군인들로 분열돼 한순간에 적이 된다.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시작으로 육군본부와 벙커 등을 거치며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비극적인 유혈 사태들이 이어진다. 이태신은 어떻게든 서울을 지키고자 다른 공수 부대, 사단에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미 하나회가 모든 부대의 정보 및 통신을 장악하고 있기에 속수무책이다.

김성수 감독은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13일 새벽까지 9시간동안 벌어진 비극의 역사를 정확한 계산, 몰입감을 높이는 연출로 141분간 손에 땀을 쥐게 생생히 재현해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먹은 꽉 쥐고 가슴은 뜨거워진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정해져있어서, 허구가 아닌 실화이기에 분노하다가 그 끝엔 절망 섞인 탄식이 이어진다.

물론 전두환과 신군부가 이끌던 제5공화국 전후의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미 아는 만큼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실화의 힘과 별개로 대중 영화로서 이 작품이 갖춘 엔터테이닝 요소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전두광의 반란, 반란을 맞닥뜨린 육군본부를 냉철하면서도 균형감있는 시선으로 그려낸 점 역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그날의 비극은 전두광 한 명의 야욕과 하나회의 장악력 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군인에 대한 정의, 학연·혈연·지연으로 퇴색한 군인의 정체성, 목적을 잃어버린 명분, 무조건적 상명하복과 계급, 체면과 형식을 중시하는 군 조직의 뿌리 깊은 문제점들이 총체적으로 작용했다. 위기 상황에도 계급장에 연연하는 알량한 자존심과 체면, 안일함이 반란을 막을 수도 있던 소중한 기회를 여러 번 빼앗는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조직 곳곳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점들이기에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구멍 없는 꽉 채운 열연이 몰입을 더한다. ‘전두광’ 역의 황정민은 비주얼 변신을 능가하는 파격적이며 압도적인 연기로 극의 긴장감을 이끌고, 관객들의 탄식을 유발한다. 특히 놀라운 건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으로 분한 정우성이다. 황정민의 기세에 밀리지 않고 조용히 강하게 부딪히며 그 끝엔 감정선을 쏟아내듯 폭발시킨다. 한없이 팽팽히 맞서다 파국의 결말에 다가설 때쯤, 눈시울은 붉어지고 숨이 턱 막히는 정적이 생길 만큼 이태신의 감정에 이입이 된다. 두 사람을 비롯해 이성민, 김성균, 박해준, 최병모, 박훈, 이재윤, 정만식, 박원상 고 염동헌, 특별출연인 정해인, 이준혁까지 촘촘히 극을 메워 1979년으로 인도한다. 잠깐 등장하는 단역 배우들마저 잠깐 서울의 봄이 찾아온 줄 알았던 그 시절의 청년, 병사들이 돼 완성도를 높였다.

한국 영화는 죽지 않았다. 조금은 늦었지만 찾아와줘서 고마운, 올해 가장 뜨거운 작품이 될 것이다.

11월 22일 개봉. 김성수 감독.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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