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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구속 등 작은 ‘승전’을 거쳐 두 번의 도전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한 것도 성과로 평가된다. 반면 국민적 지탄을 받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끝내 놓친 것은 오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에 실패한 것도 특검의 미숙한 대응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 측에서는 여론몰이식 수사를 벌였다는 비난도 나온다.
특검의 뚝심…이재용·김기춘·조윤선 구속
지난해 12월 1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박영수 특별검사는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수사팀장으로 지명하는 등 곧바로 특검팀 구성을 마친 뒤 같은 달 21일 현판식을 열고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특검은 삼성 뇌물죄와 문화계 블랙리스트(지원 배제 명단), 이화여대 학사 비리, 비선진료 등 4대 의혹을 핵심 수사 대상으로 정하고 출범 초 관련 인사나 장소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펼쳤다.
첫 성과는 지난해 마지막 날 나왔다.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이던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종용한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삼성이 합병 대가로 박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절치부심한 특검은 지난 13일 이 부회장을 재소환해 조사한 뒤 이튿날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강수를 뒀고 17일 영장 발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이대 비리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에 관여한 김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이 줄줄이 구치소로 향했다. 이대 비리의 경우도 최경희 전 이대 총장을 비롯해, 김경숙 전 이대 학장, 남궁곤 전 이대 입학처장, 류철균·이인성 이대 교수 등을 잇따라 구속했다. 비선진료 의혹의 핵심인 김영재·박채윤 부부도 각각 의료법 위반과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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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비리 종합세트’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의혹에 휩싸인 우 전 수석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 대신 검찰로 사건을 이첩하기로 결정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우 전 수석 관련 의혹은 특검법에도 명시돼 있다. 특검법 2조 9호와 10호는 각각 최순실씨가 저지른 비리를 방조한 직무유기와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압박해 사퇴시킨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해 놨다. 세월호 의혹 수사를 방해하고 횡령·탈루 등 개인 비리를 저지른 정황도 포착됐다. 의경 아들의 보직 특혜 관련 직권남용 의혹도 있다.
특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직무유기, 특별검찰관법 위반, 국회 위증죄 등 4가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불발됐다. 일각에서는 특검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우 전 수석을 파헤치려면 ‘우병우 사단’으로 불리는 검찰 내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한 만큼 특검이 부담을 느꼈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에 실패한 것도 특검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특검은 청와대 측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면서 대면조사를 시도했지만 조사 과정을 녹음·녹화하는 문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경위든 대통령 조사 결과를 공소장과 수사결과에 담지 못한 것은 향후 특검이 기소한 피고인들이 공판 과정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지난 3일 청와대 압수수색이 무산된 이후 특검의 행보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무리하게 제기한 행정소송이 각하되면서 청와대에 철옹성이라는 이미지만 덧입혔다. 임의제출 방식으로라도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실리를 챙기는 게 나았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