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부회장은 9시가 조금 안 된 시각에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에 올라타 삼성사옥을 나섰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직원과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 팀 직원 20여 명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서초동으로 움직인 뒤였다.
“마음 추스르려 평소보다 일찍 출근”
이 부회장이 박영수 특검팀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강남구 D빌딩 3층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15분. 긴 회색 코트를 입고 단추 두 개만 잠근 채 차에서 내린 이 부회장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삼성 오너가(家) 첫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운명의 날’을 맞은 그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보였다.
이 부회장은 입구 양옆으로 늘어선 수많은 취재진을 향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입을 꾹 다문 채 특검 사무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 부회장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특검 사무실로 올라간 지 20분도 안 돼서다. 그리고는 특검팀이 준비한 검은색 카니발 승합차를 타고 곧장 법원으로 향했다. 이 부회장이 탄 카니발은 약 20분 만인 오전 9시56분쯤 법원에 도착했다.
영장심사 4시간가량 진행…곧장 구치소로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약 3시간 45분이 지난 오후 2시 10분이 돼서야 끝났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다른 피의자와 비교했을 때) 평소보다 오랜 시간 동안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심사가 끝난 뒤 곧장 경기도 의왕에 소재한 서울구치소로 이동했다. 특검은 애초 그를 특검 사무실에서 대기시키려던 계획을 바꿔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서울구치소에서 대기시키기로 했다. 삼성 미전실 등 주요 임직원은 지난 17일 서울구치소를 한 차례 답사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19일 새벽 무렵에나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년 만에 180도 뒤바뀐 이재용의 1월18일
이 부회장이 이런 최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확히 1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리면 지난해 1월 18일 이 부회장은 2016년 병신년 새해 자신의 첫 공식행사로 서울 중구 장충동 호텔신라에서 열린 ‘삼성 임원 승진자 만찬’에 참석했다.
삼성 임원 승진자 만찬은 매년 1월 첫째 주 월요일 열리는 행사로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참석해 승진 임원들에게 이건희 회장의 이름이 뒷면에 새겨진 고급 시계를 선물하는 전통으로 유명하다.
2014년 이후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세 번째로 이 부회장이 주재했던 1년 전 만찬은 2015년 12월 단행된 연말 사장단 및 임원인사에서 승진한 임원과 그 배우자를 초청해 그간의 노고를 격려하는 자리였다. 이 행사에는 신임 임원 197명과 함께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 오너 일가와 삼성 사장단 등이 총출동했다.
지난해는 그에게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과 책임 경영을 선언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큰 시기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 입장에선 불과 1년 전엔 올해가 삼성의 리더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젠 구속을 걱정하며 한치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