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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후 8시(현지시간). 이 보로의 S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24명은 한 화면에 얼굴을 맞댔다. 유대인, 동양인, 흑인 등 인종은 다양했다. 모임은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에서 열렸다. 학교 교장과 담임은 새 학기 준비사항 등을 알렸다. 코로나19 탓에 몇주간 이어질 화상수업 역시 줌으로 한다. 심지어 이 보로의 교육의회는 이번달 2일 특별공청회를 화상으로 열기로 했다. 사실상 모든 행정 서비스가 줌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학부모 화상회의에 참석한 K씨는 “대면회의와 비교해선 아직 어색하다”면서도 “링크만 안내 받으면 할 수 있으니 편리한 것 같다”고 했다.
미국 동부에 위치한 한 바이오업체에 다니는 직장인 L씨.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본사로 거의 출근하지 않고 있다. 재택 중인 그는 각종 회의를 줌으로 한다. 기업용 줌 서비스는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 그럼에도 줌은 대면업무의 적절한 대안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L씨는 “화상업무의 비중이 점차 늘 것으로 본다”고 했다.
‘미국 IT 거인’ IBM마저 추월한 줌
코로나19 이후 줌이 전세계를 하나로 묶고 있다. 기록적인 실적 급등에 줌의 시가총액은 ‘IT 거인’ IBM마저 제쳤다. 상장 1년 남짓한 회사가 이뤄낸 성과다. ‘줌’을 운영하는 곳은 실리콘밸리에서 2011년 문을 연, 업력 10년이 안 된 신생 회사다.
특히 줌은 창업자가 중국계 미국인임에도 미국내 반중 정서 여파를 피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에릭 위안 줌 CEO는 지난해 4월18일 기업공개(IPO)에 나섰고, 공모가 36.00달러에서 시작해 첫거래일 62.00달러에 장을 마쳤다. 주가는 이날까지 1년4개월 남짓 사이 638.21% 폭등했다. 줌이 기세를 올린 건 코로나19 이후다. 줌의 올해 초(1월2일 기준) 주가는 68.72달러였다. 그저 흔한 중소형 IT주였던 셈이다. 실제 줌은 지난해 말만 해도 실리콘밸리를 기반 기업의 소규모 화상회의 플랫폼을 서비스하는 게 주요 사업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코로나19사태가 터진 이후 위상이 아예 달라졌다.
코로나의 시대가 ‘줌의 시대’라는 것은 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줌의 2020회계연도 2분기 매출은 6억635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55.08% 급증했다. 주가는 올들어 566.02% 치솟았다.
켈리 스텍켈버그 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신규 고객이 이번 매출 증가의 81%를 이끌었다”고 했다. 애플리케이션 분석 스타트업인 센서타워에 따르면 줌의 2분기 월평균 사용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4700% 넘게 늘었다. 무려 1억4840만명이다. 이날 주가가 40% 넘게 오른 것은 이같은 호실적으로 확인된 줌의 성장성 때문이다.
심지어 줌은 미국 IT산업의 상징인 IBM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CNBC에 따르면 이날 주가 폭등에 힘입어 줌의 시가총액은 1290억달러로 급증해 IBM(1100억달러)을 처음 뛰어넘었다. 미국 전체 상장사 중 55위다. 위안 CEO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200억달러까지 늘어났다.
구글·MS·페북 등 후발주자 도전 변수
그러나 줌은 최근 중국 본토에 있는 고객에게 새 제품 혹은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 정부의 제재를 빠져나갔다.
줌은 제3자인 협력사를 통해서만 화상회의 서비스를 중국에 공급하고 있다. 화웨이, 틱톡 등이 매서운 칼바람을 맞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된다.
변수는 줌에 도전하는 후발주자의 면면이 화려하다는 점이다. 구글(미트), 마이크로소프트(팀즈), 페이스북(룸스) 등은 화상회의 서비스를 중요한 미래 먹거리로 보고 있다. 이 시장이 빅테크 기업들의 전장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재택근무의 효율성이 예상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고 있어 당분간 줌의 가치는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