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아이엄마→최초게시자'…마녀사냥터 된 240번 버스

미확인 사실 두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언론보도로 논란 확산
“애먼 피해 예방 위해 해당 글에 대한 파장여부 先인식해야”
  • 등록 2017-09-13 오후 7:15:00

    수정 2017-09-13 오후 8:30:05

[이데일리 박철근 윤여진 기자] 지난 12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포털사이트는 ‘240번 버스’라는 키워드로 도배가 되다시피했다. 혼잡한 퇴근길 시내버스에서 어린 아이가 먼저 내린 상태에서 아이 엄마가 미처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버스가 그대로 출발한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은 당시 버스에 탑승했다고 주장하는 한 누리꾼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됐다. 해당 글은 어린 아이가 먼저 버스에서 내렸고 미처 따라 내리지 못한 아이 엄마가 버스가 출발한 후 버스기사에게 정차를 요구했지만 버스기사가 이를 무시하고 다음 정거장까지 버스를 운전했다며 버스 운전기사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버스기사를 상대로 비난과 욕설을 쏟아부었고 서울시와 경찰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서울시와 경찰은 버스내부 CCTV(폐쇄회로TV) 등을 분석한 결과 버스기사의 과실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접한 누리꾼들은 아이엄마와 최초 제보자를 다시 제물로 삼았다. 이 사건을 두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누리꾼들의 마녀사냥식 비난과 속보경쟁에 치우쳐 사실확인 없이 기사화하는 언론행태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자료=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 캡처)
240번 버스 사고의 재구성

사건은 11일 오후 6시20분께 중랑공영차고지를 향하던 대원교통 소속 240번 시내버스가 건대역 정류장에 정차하면서 시작됐다. 건대역 정류장에서 버스는 16초간 정차했고 7살 여아가 내린 뒤 버스는 다음 정류장인 건대입구역 사거리로 향했다.

이때 미처 같이 내리지 못한 아이 엄마는 버스기사에서 정차를 요청했지만 출발 10초만에 도로 3차선으로 진입한 차량은 250m떨어진 건대입구역 사거리 정류장까지 운행했다. 23초만에 도착한 건대입구사거리 정류장에서 하차한 아이 엄마는 부랴부랴 전 정거장을 향했고 다행히 아이는 무탈하게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아이 엄마는 자양1파출소를 찾아 관련 내용을 신고했다.

이렇게 끝나는가 싶던 사건이 커진 것은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에 ‘아이 엄마의 요구를 무시하고 버스가 다음 정류장까지 정차없이 달렸다’고 신고하는 민원글이 올라온 뒤부터다. SNS를 타고 이 글이 급속도로 확산했고 일부 언론이 이를 확인없이 보도하면서 해당 버스기사에 비난이 빗발쳤다.

서울시와 경찰이 ‘버스기사에는 책임이 없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고, 한 언론이 당시 버스정류장 CCTV 영상을 확보해 아이가 다른 보호자와 함께 내리는 어린이 2명을 따라 하차하는 장면이 공개하자 사건은 새국면을 맞았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민원 글을 토대로 해당 버스기사로부터 경위서를 제출받고 버스 내부의 CCTV를 살펴본 결과 해당 기사가 교통법규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해당 버스기사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네티즌의 주장도 국면 전환에 한 몫을 했다.

이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저희 아버지는 근 25년동안 승객과의 마찰, 사고 등 민원은 한 번도 받지 않으셨다”며 “승객의 말을 무시하지도 않았고 욕 또한 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비난의 화살은 아이엄마를 향했고 ‘아이엄마가 스마트폰에 빠져 정류장을 지나쳐 놓고 버스기사에 책임을 전가했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퍼져나갔다.

이날 밤 해당 글을 최초로 게시했다고 밝힌 누리꾼은 사과의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 누리꾼은 “제 감정에만 치우쳐서 글을 쓰게 된 점 그리고 아이를 잘못 인지한 점 기사님께도 너무 죄송할 따름이다”라며 기사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사실보다 확신이 더 중요”

온라인 공간에서 무고한 피해자를 상대로 마녀사냥이 자행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글을 올리거나 퍼나를 때 사실 여부 확인을 등한시하는 게 가장 문제다. 누리꾼뿐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 올라온 글의 맥락을 살피고 사실 관계를 따져 검증해야 할 언론마저 책임을 소홀히 하면서 논란은 확대 재생산 된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인용 보도 할 때 사실 관계를 다루기 보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속보로 쓰는 경향이 있다”며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의 경우 사실 확인 자체가 어렵다는 이유로 저널리즘의 기본인 사실 관계 확인을 게을리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실을 확인하는 속도보다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마녀사냥이 이뤄진다”며 “이 간극을 좁히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속보 경쟁 등으로 인해 오히려 언론이 기름을 붓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온라인 상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속도와 사실을 확인하는 속도의 간극이 벌어지는 현상이 반복되면 정보가 각색돼 결국 아무런 정보도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가 될 수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최초 허위사실을 게시 또는 유포한 자를 처벌하는 법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은 진실 보다는 주관에 따라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SNS세대의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해석도 있다. 여러 억측들이 모여 빚어낸 현상을 사실로 간주하는 착시 현상이 마녀사냥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무엇이 진실인가’가 아닌 본인의 확신과 대상의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느냐로 진위여부를 결정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며 “확인이 불가능한 정보들이 SNS를 타고 무차별 유통되면서 빚어진 사태”라고 설명했다.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잘못된 욕구가 온라인상에서 마녀사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소장은 “평소 사회·경제적으로 좌절감과 소외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억눌린 공격 성향을 한꺼번에 표출하는 것”이라며 “‘어디 걸리기만 해 봐라’란 식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현대인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더이상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 SNS 사용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SNS는 이미 공사(公私)의 경계구분이 애매해진 공간”이리며 “글을 쓰거나 옮길 때 사회에 끼칠 파장 등도 의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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