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위안부 판결, 외교적 해결 가능성에도 난제 수두룩

21일 '국가면제' 인정한 사법부 판단
역설적으로 외교적 해결 노력 기울일 수 있는 기회
사죄 합의문 담았지만 이행하지 않은 日 설득해야
英, G7외교장관회담에 韓초대…한·일 첫 대면할 듯
  • 등록 2021-04-22 오후 7:42:01

    수정 2021-04-22 오후 7:42:01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민성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 손해배상 청구를 ‘국가면제권’을 인정하며 이를 각하했다. 불과 3개월 전 고(故) 배춘희·강일출 할머니 등 12명 제기한 첫 번째 소송에서 “일본의 범죄 행위가 계획적·조직적으로 이뤄진 심각한 인권 침해 행위이므로 예외적으로 국가면제를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것과 정반대다.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반발했지만, 외교가에서는 비로소 정부가 외교적 노력에 나설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고 평가한다.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진정으로 이행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22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전날 판결에 대해 “사법부의 판결이라는 족쇄에 묶어놨던 위안부 문제를 외교의 공간으로 환원시켰다”며 “지금이라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제대로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판결을 “외교적 해법을 찾으라는 주문”이라고 해석하면서도 “출구가 없는 문제”라고 해석했다. 일본정부가 사죄를 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할 뿐더러, 반대급부로서 소녀상 이전 등 우리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 합의 직후 “위안부 전쟁범죄 인정한 것 아니다” 발언에 국내외 반발

합의문을 보면 당시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는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며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을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던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합의문에 이미 담겨 있다. 문제는 이같은 사죄와 반성의 마음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국·내외의 반발이 커졌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합의 직후 “일본군 위안부를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뉴스1]
다만 위안부 합의 자체를 ‘적폐’로 치부하며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협상 당사자들을 모두 징계한 것은 외교적 실기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관계자는 “이렇게 하면 누가 앞으로 누가 그 멍에를 짊어지려고 할 것이냐”라며 “결과적으로 이를 비판한 문재인 대통령조차 취임 이후에는 해당 합의를 공식인정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협상 자체를 적폐로 취급하며 한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빌미를 일본에게 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이야말로 일본이 진정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방점 역시 이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내신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일본이 2015년 합의정신에 따라서 반성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면 문제의 99%는 해결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 모두 국민감정 악화…관계개선 공감대 형성은 희망

문제는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한·일 양국 모두 상대 국가에 대한 국민감정이 악화했다는 것이다.

한 보씩 양보하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위안부 합의의 특성상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양국 정부 모두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경우 아베 총리보다 정치적 입자가 약해,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한국과 대화에 나서기 더욱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정부는 정 장관이 취임한 지 2달이 넘도록 대면 협의는커녕 전화통화도 응하지 않고 있다.

다만 한·일 모두 이대로 양국 관계를 내버려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사설을 통해 “쌍방 모두 불만이 남아 있지만, 서로 다가서려고 노력했던 2015년 위안부 문제의 정부 간 합의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덕 교수는 아직 화해·치유 재단 등에서 위로금을 수령하지 않은 생존자 12명에게 이를 전달하고 이 기회에 일본 총리의 사죄를 담은 편지를 전달하는 것을 제안했다. 아베 총리는 거부했지만, 역대 많은 일본 총리들이 편지의 형식으로 사죄의 마음을 전했다. 양 교수는 먼저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위안부 문제가 단기간에 풀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국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의견을 수렴해나가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며 “그동안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해왔지만,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피해자는 한·일 정부 모두에게 방치됐다”고 비판했다.

한편 내달 2, 3일 영국 런던에서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담이 열린다. 정 장관 역시 주최국인 영국의 초대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한·일 외교장관이 처음 대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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