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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7일 오후 서울시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지난 2011년에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웨이퍼(원판) 등 일본으로부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도입이 어려워지면서 정부를 중심으로 관련 제품들에 대해 국산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며 “하지만 3개월 정도 지나 어느 정도 원상 복구하고, 또 6개월이 지나니 국산화 논의는 없던 일이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지난 5일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 100개 전략 품목에 집중 투자해 5년 내 공급안정을 이뤄내겠다는 내용을 담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향후 7년 간 7조 8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글로벌 무역환경이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로 바뀌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장기화할 것”이라며 “때문에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역시 장기적인 플랜을 만들어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수출규제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러한 기회를 살리기 위해 국산화한 제품을 검증할 수 있는 ‘성능평가팹’(테스트베드)이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박 회장은 “반도체 미세공정화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과는 다른 소재가 필요하고 이를 적용할 새로운 장비 역시 필요하다”며 “그동안 일본 등에서 도입한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할 수 있는 적기”라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해 12인치(300㎜) 웨이퍼 기반으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를 평가할 수 있는 성능평가팹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소재 3종 중 일부는 단기간에 국산화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있어 단기적인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은 “불화아르곤(ArF)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은 국내 업체들이 이미 상용화했다”며 “하지만 극자외선(EUV) 감광액은 일본산을 대체하기 불가능하며, 국산화하는데 적어도 2∼3년 정도 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극자외선 감광액은 10나노미터(㎚, 10억분의 1m) 안팎의 미세회로선폭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으로 쓰인다. 이 공정에서는 현재 모바일에 들어가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을 생산한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대한 업계 스스로의 반성도 있었다. 이현덕 원익IPS 대표는 “해외 장비기업들에 비해 후발주자로 출발한 국내 장비기업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설비를 적기에 제공할 수 없었다”며 “이들 대기업은 글로벌 1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업계에서 가장 앞선 소재·부품·장비 기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장비기업들이 더 노력해야 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