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 ‘파도를 널어 햇볕에 말리다’(2022·사진=아트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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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빙하가 녹아내릴 때 이런 ‘그림’이 나오려나. 형체를 지탱하려는 힘과 형체를 무너뜨리려는 힘, 그 사이에 일어난 마찰이 강렬한 색으로 뻗쳐나온다. 그런데 슬쩍 눈 돌린 지점에 걸린 작품명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파도를 널어 햇볕에 말리다’(2022)고. 달랑 하나는 건진 셈이다. ‘물’. 감히 형체란 틀로 가둘 수 없는 그것 말이다.
작가 권혁(56)은 세상을 구성하는 근원과 본질이 빚어내는 ‘현상’에 관심이 있단다. 그런데 그 관심이 ‘그림 그리기 좋은’ 바탕인 건 결코 아니다. “만물의 형태·기능을 벗겨 완벽하게 증발시킨 뒤 남는 것에 집중한다”니까. 그래서 작가에게 작품은 “기하학을 도구로 그 남은 것을 온전히 본질로 환원한 연출”이란 거다.
마땅히 고민은 언젠가 사라져버릴 그 현상을 어떻게 잡아낼 건가에 모일 터. 하지만 물이라면 말이다. 빙하가 됐든 파도가 됐든, 뭐든 가능할 테니까. 변화와 순간이 교차하는 현상까지 말이다. “현상의 찰나를 물감의 색과 물의 흐름으로 포착하는 게 내 작업”이라 설명했지만, 결국 작가는 그게 우리 삶이란 얘기를 한 거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저 모든 게 순간의 현상일 뿐이라고.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아트파크서 여는 개인전 ‘파도를 널어 햇볕에 말리다’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오일·아크릴. 65.5×53㎝. 아트파크 제공.
| 권혁 ‘파도를 널어 햇볕에 말리다’(2022), 캔버스에 오일·아크릴, 162×130㎝(사진=아트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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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 ‘현상’(Phenomenon Scape·2022), 리넨에 아크릴·실 바느질, 170×134㎝(사진=아트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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