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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 등에 따르면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거래일과 비교해 5.2% 오른 배럴당 114.9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8일(배럴당 123.70달러) 이후 가장 높다. 장중 115.40달러까지 올랐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장중 배럴당 122.34달러까지 폭등했다. 6%에 가까운 오름 폭이다. 월가에서는 언제든 배럴당 130달러선을 뚫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유가가 치솟은 건 러시아 정부가 흑해 연안 노보로시스크항이 태풍으로 망가져 원유 수출이 급감할 수 있다고 밝혀서다. 이 원유는 카스피 파이프라인 컨소시엄(CPC)이 추출하는 것이다. CPC는 카자흐스탄 서부 텡기스 평원의 유전에서 원유를 추출한 뒤 1500㎞ 파이프라인을 통해 노보로시스크로 보낸다. 이후 원유를 배에 옮겨 수출한다. 이 항구가 파손돼 수출에 차질을 빚는다는 게 러시아 측 설명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서방에 대항한 러시아의 보복이 자리한다는 관측이다. CPC 최대주주는 지분 24%를 보유한 러시아 정부다. 미국 셰브론과 엑손모빌은 각각 15%, 7% 갖고 있다. 러시아가 미국에 경고성 조치를 하기 좋은 구조다.
러시아가 이렇게 강경한 건 에너지 대체지가 부족한 유럽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으로 읽힌다. 미국은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지만, 유럽은 러시아산 의존도가 높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바로 금지하면 유럽은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독일은 러시아산 원유 의존도가 전체의 3분의1이다. 미국과 유럽이 에너지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만에 하나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방문에 맞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대러 에너지 제재를 강화할 경우 국제유가는 더 폭등할 수 있다. SPI애셋 매니지먼트의 스티븐 이네스 매니저는 “새로운 대러 제재가 나올 것”이라며 “나토 정상회의는 중요한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미 적대하는 최대 산유국 사우디
블룸버그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빈 살만 왕세자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빈 살만 왕세자에게 협조를 구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곧 미국에게 적대적인 빈 살만 왕세자가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유가 폭등이 추가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월가는 최근 원유시장 패닉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특히 연준의 통화정책 연착륙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연준이 한 회의에서 50bp(1bp=0.01%포인트)를 넘어 75bp 기준금리 인상을 전망하는 인사도 있다. 긴축 자체로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는 속도다. 이 와중에 오일쇼크가 지속해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이 더 커질 경우 연준의 긴축 조치는 먹히지 않을 수 있다.
월가 한 금융사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오고 있다는 경계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