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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는 이날 대한항공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제출할 예정인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매각 방안 등을 담은 시정조치안 동의 여부를 따질 예정이었다. 특히 이날 이사회를 하루 앞두고 그동안 매각에 반대 의견을 표한 사내이사였던 진광호 안전·보안실장(전무)이 돌연 사임하면서 이사진은 기존 6명에서 5명이 줄어든 변수도 발생했다. 다만 찬성파는 여전히 3명으로 알려져있어 의결정족수 과반으로 안건 가결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이날 이사회는 사외이사의 이해충돌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안건 결의를 시작도 못하고 끝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이날 이사회는 일부 이사들간 이해충돌 이슈 등에 대한 의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안건 의결에 들어가지 못하고 정회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안건에서 찬성 측에 섰던 것으로 알려진 사외이사 중 한 명인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표에 대한 유효성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김앤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내 기업결합 승인을 위해 지난 3년간 대한항공 측에 법률자문을 해왔던 곳이다.
여기에 화물사업부 매각 행위가 배임죄 성립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도 쟁점으로 꼽히고 있다. 알짜사업을 꼽히는 화물사업부 매각은 자칫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주주가치를 훼손해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연매출 3조원을 넘는 저력을 보였던 사업이다. 화물특수가 끝나고 규모가 줄었다지만 올 상반기에만 7800억원의 매출을 냈다.
반면 화물사업의 매각가격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점에서 미리 배임을 논할 수는 없다는 입장도 맞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화물사업 매각가가 미정이기 때문에 이것이 과연 아시아나항공에 손해일지 이득일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화물사업 분리 매각이 실패할 경우 대한항공과의 합병무산으로 인한 피해가 사업부 매각 이슈보다 훨씬 더 커 ‘배임 소지’가 적다는 논리도 있다.
문제는 찬반 어느 쪽이 됐던 결론이 늦어질수록 아시아나 자체 경쟁력은 급속도로 저하되고 임직원들 사기도 땅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7월 아시아나 매각 공고 이후 4년이 넘는 합병 작업 동안 신규 투자나 신규 인원 충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화물 사업 역시 투자가 중단되면서 아시아나 11개 화물기의 평균 기령은 27년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대한항공의 평균 기령은 11년이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 작업이 길어지면서 우리 항공업계 전반의 발전도 지연되고 있는 만큼 빠른 결론이 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당초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로부터 화물사업부 매각 승인을 받아 31일(현지시간)까지 EC에 시정조치안을 제출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차질이 생긴 만큼 제출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양해를 구한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EU가 양사 사정을 고려해 며칠 정도는 시간을 더 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아시아나항공에 7000억원의 계약금과 중도금을 활용해 재무적 지원을 하는 방안도 전날 이사회를 통해 결의했다. 우선 급한 불을 끄도록 도와주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 이번 결의는 효력을 상실한다. 즉 없던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