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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이번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지켜보는 시장의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속된 말로 “한은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올리지도 더 내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늪에 빠졌다는 관측은 꽤 됐다. 국내 경기의 장기 침체 국면을 보면 추가 인하가 이상할 게 없지만, 트럼프노믹스에 따른 미국의 금리 방향은 상승 쪽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추가 인상은 불황기 때 쉽사리 꺼낼 수 없는 카드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한은 금통위는 23일 기준금리를 8개월째 연 1.25% 수준으로 만장일치 동결했다. 금통위 본회의 직후 나타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중립적 통화정책’ 신호를 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장 관계자들의 관전평 역시 ‘중립’으로 요약된다. 윤여삼 미래에셋대우 채권팀장은 “한은의 통화정책은 현재 중립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립 의지’ 내비친 이주열
주요 관전 포인트는 금통위의 경기 인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준금리를 변동하기 어려운 시기라는 뜻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 총재는 “성장 흐름에 대한 금통위의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표현만 약간 달라졌을 뿐이라는 얘기다.
수출과 설비투자는 지난달 경제전망 당시보다 개선되겠지만, 민간소비는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변화가 거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은에 따르면 실제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2% 급등했다. 지난해 12월 설비투자지수는 반도체 제조용장비 등 기계류 투자가 크게 늘어난 덕에 전기 대비 3.4%, 전년 동기 대비 10.0% 각각 상승했다. 완연한 반등 기조다. 반면 지난해 12월 소매판매액 상승률은 각각 전기 대비 -1.2%, 전년 동기 대비 1.6%에 그쳤다.
특히 이 총재는 최근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 흐름에 따른 수출의 영향에 대해서도 “우리 경제의 구조 변화로 인해 수출에 대한 환율의 영향력은 옛날보다 낮아졌다”면서 “환율의 가격 경쟁력을 통한 수출 영향력은 과거보다 약화됐다”고 했다.
이 총재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물가안정목표인 2%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도 중립적인 정책 의지를 내비친 표현으로 읽힌다.
“가계부채도 여전히 우려”
가계부채에 대한 한은의 판단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추후 가계부채 증가세가 완화되겠지만 계속 유의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은 대출 초기부터 원금도 나눠서 갚아야 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때문에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풍선효과’로 비(非)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증가하고 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를 가볍게 볼 수 없다”면서 “올해 들어 시장금리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고 대내외적으로 금융·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 저신용 저소득 다중채무자 등 취약차주의 채무 부담에 대해 여러가지 유의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최근 몇달간 가계부채를 통화정책의 주요 요인으로 꼽아왔다. 그런데 가계부채의 양상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지켜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실제 한은 금통위는 이번달에도 가계부채 증가세를 통화정책의 주요 고려사항으로 거론했다.
이 총재는 기자들과 만나서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총량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면서 “거시정책 관점에서 총량이 많고 미시적으로 봐도 취약가구가 문제”라고 말했다.
트럼프발(發)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금통위의 우려도 여전했다. 금통위는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과 그 영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정상화 추이 등을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주요 요인으로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