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옛날 같지 않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요.”
지난 30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뮤지컬배우 정선아(40)의 표정에선 미소가 가득했다. 최근 열린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뮤지컬 ‘이프덴’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미나 역을 맡은 배우 정선아. (사진=오디컴퍼니) |
|
‘이프덴’은 정선아가 2022년 5월 딸을 낳은 뒤 뮤지컬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수상 소감도 뭉클했다. 정선아는 “체중이 80㎏까지 나갔는데 무대에 복귀해 다시 춤추고 노래할 수 있을지 고민과 두려움이 많았다”며 눈시울을 붉혔었다.
“무대 복귀를 위해 편한 길을 택했어도 되는데, 대사도 노래도 많은 어려운 작품을 하는 게 맞는지 생각이 많았죠. 대사도 잘 안 외워져서 많이 울기도 했고요. 잠도 못 자면서 올린 공연이었는데,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좋아서 뿌듯해요.”
‘이프덴’으로 성공적으로 무대에 복귀한 뒤 정선아는 지난 한 해 동안 누구보다 바쁘게 활동했다. ‘멤피스’에서는 60년대 미국 멤피스의 클럽을 휘어잡은 가수 펠리샤 역으로 변함없는 가창력과 춤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현재 공연 중인 ‘드라큘라’(3월 3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는 주인공 드라큘라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미나 역으로 애절한 로맨스를 보여주고 있다.
정선아의 ‘드라큘라’ 출연은 2014년 국내 초연 이후 약 10년 만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 흐른 만큼 정선아의 작품 해석도 더욱 깊어졌다. 10년 전엔 이해하기 힘들었던 인물의 감정을 조금 더 알게 됐다. 정선아는 “초연 때는 연기에 있어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그때는 약혼자 대신 드라큘라를 선택하는 미나가 나쁘다고만 생각했다”라며 “지금은 전생에 대한 판타지라는 점에서 미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무대에 서고 있다”고 말했다.
|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미나 역을 맡은 배우 정선아의 공연 장면. (사진=오디컴퍼니) |
|
정선아는 2002년 18세 나이에 뮤지컬 ‘렌트’의 미미 역으로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결혼하고 딸을 갖기 전까지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이미지로 관객과 만났다. 한없이 긍정적인 ‘위키드’의 하얀 마녀 글린다, 근심 걱정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아이다’의 암네리스 등이 대표적이다. 정선아는 “예전엔 글린다처럼 ‘블링블링’한 모습이 실제 저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라며 “그 당시 뮤지컬 선택 기준 또한 내가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관객이 내 노래를 얼마나 좋아할지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경험하면서 뮤지컬을 대하는 정선아의 태도는 달라졌다.
“‘이프덴’의 엘리자베스처럼 지금은 뮤지컬에서 저와 닮은 캐릭터는 조금 더 평범해진 것 같아요. 작품 선택 기준도 바뀌었어요. 이제는 작은 역할이더라도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역할이면 좋겠어요. 새로운 도전도 하고 싶어요. ‘정선아가 저런 것도 할 수 있나?’라는 이야기를 듣더라도요. 소극장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관객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작업도 하고 싶고요.”
어느새 22년 차 뮤지컬배우가 된 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정선아는 바쁜 공연 스케줄 속에서도 동료 및 선후배 배우들의 공연을 빠짐없이 찾아가 응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 정선아의 롤모델은 뮤지컬 1세대 배우 최정원이다.
“나이가 들어도 무대에서 멋진 모습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껴요. 그분들 덕분에 저 또한 아이를 낳고도 이렇게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죠. 할 수 있는 한 무대에 계속 서면서 뮤지컬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래요.”
|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미나 역을 맡은 배우 정선아. (사진=오디컴퍼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