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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몰타)=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몰타와 같이 빠르게 변하는 국가는 어디든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 문화나 지역은 문제되지 않는다. 변화를 이끄는 국가로 인재와 자본이 몰려든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이 분야에 거대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스탠스를 바꾼다면 한국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싶다.”
자본시장 전문가로 지난 9월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Binance)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스카웃된 웨이 저우(Wei Zhou)는 크립토 생태계에서 한국이 가진 경쟁력과 잠재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저우 CFO를 `2018 몰타 블록체인 서밋`이 열리는 발레타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2일(현지시간) 직접 만났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학을 공부했고 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땄다. 골드만삭스 홍콩에서 4년간 일하면서 투자은행(IB) 업무를 맡았고 중국 온라인 리크루팅 플랫폼인 자오핀과 최대 광고회사인 참커뮤니케이션에서 CFO를 역임한 바 있다. 회사측이 공식 부인하며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가 영입될 당시만 해도 많은 언론들이 `주식시장 상장(IPO·기업공개)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라고 분석했을 정도로 그는 바이낸스에서 존재감을 가진 최고위급 임원이다.
“몰타에서의 6개월 굉장…행사·기업 많고 정부규제는 확실해”
바이낸스는 올초 영업 거점을 홍콩에서 일본 도쿄로 옮겼다가 다시 규제를 피해 올 3월 몰타로 이전했다. 최근 몰타 정부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을 위해 짓고 있는 신축 건물에 사무실을 열었다. 저우 CFO는 “우리는 전통적인 기업처럼 물리적인 본사를 두는 식이 아니라 몰타로 본사를 이전했다고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부인하면서도 “몰타에서의 6개월을 돌아보면 굉장한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글로벌 블록체인 컨퍼런스가 잇달아 열리고 있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이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특히 몰타는 전세계 최초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합법화해 규제하는 국가일 정도로 크립토 분야에 우호적인데 이 덕에 암호화폐 거래소나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투자하는데 있어서도 법적·제도적으로 불확실성이 없다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韓 크립토분야 거대한 기회…정부정책 바뀌면 투자 크게 늘릴 것”
이런 점에서 저우 CFO는 한국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크립토 분야에서 아주 거대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잘 교육받은 인재가 많고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비롯해 탁월한 IT 인프라를 가지고 있으며 이미 많은 프로젝트들이 등장하고 있고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벤처캐피털이나 크립토펀드 등도 활성화되고 있어 이미 아주 잘 발달된 블록체인 생태계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암호화폐 거래소만 봐도 한국 거래소들이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원화도 전세계 암호화폐 거래에서 3대 통화에 들어갈 정도”라고 덧붙였다.
한국에 대한 투자에도 관심을 보였다. 저우 CFO는 “현재 우리는 바이낸스 랩(Binance Lab)을 통해 한국 프로젝트인 테라(Terra)에 투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테라는 티몬 신현성 의장이 주도하고 있는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한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다. 그는 “테라는 한국시장 만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글로벌 프로젝트이며 이처럼 한국 기업이나 프로젝트가 글로벌 생태계에서도 차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만약 한국 정부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친화적인 정책으로 돌아선다면 한국에 대한 투자를 분명히 크게 늘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는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라고 설명한 저우 CFO는 “그 만큼 한국이 가진 기회가 엄청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훌륭한 IT 인프라와 인력,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생태계에서 한국 대기업들이 보이는 막강한 영향력, 전 세계가 인정하는 열혈 암호화폐 투자자 커뮤니티 등을 손에 꼽은 그는 “이 분야에서 한국이 가진 에너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는 “이런 점 때문에 한국시장을 주시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도 확장하겠지만 무엇보다 바이낸스 랩스를 통해 더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규제 불확실성과 영어 사용능력은 한국이 가진 단점”
반대로 한국이 가진 단점을 꼽아 달라고 하자 역시 규제의 불확실성을 우선 언급했다. 현재 바이낸스는 전 세계 180여개국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1000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용자수를 지속적으로 더 늘리고 사업을 확장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설명한 저우 CFO는 “이를 위해 법정화폐로 거래 가능한 거래소를 늘리고 있고 내년 중에는 모든 대륙에 한 곳 이상 씩의 법정화폐 거래소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미 아프리카 우간다에 1호 법정화폐 거래소를 열었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에 2호를 출범했다. 유럽에서는 몰타 등 지역을 고려하고 있다.
아울러 또 하나의 걸림돌로 영어를 지적했다. 그는 “전세계를 어디를 가봐도 이 세계의 공용어는 영어 하나뿐”이라며 “영어 사용 능력이 더 높아져야 한국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크립토펀드, 암호화폐 거래소 등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몰타를 보면 알 수 있다”며 “몰타가 가진 큰 장점 중 하나는 영어 사용 능력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영국 식민지였다는 불운한 역사가 오히려 전 국민들이 유럽 국가들 중에서 영어를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기회가 됐다”고 덧붙였다.
“크립토뱅크·바이낸스코인 확대 추진…선물상품도 관심”
바이낸스의 향후 사업 계획도 들어봤다. 바이낸스는 현재 몰타에서 세계 최초의 크립토 뱅크(Crypto Bank)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저우 CFO는 “현재 설립 작업이 진행 중이며 조만간 몰타 정부에 은행 인가를 신청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전통적인 은행이 되려는 건 아니다”고 분명히 선을 그은 뒤 “은행들이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영역에 투자하기를 꺼리고 있는 만큼 우리가 나서 이 분야에 적극 투자하는 크립토 뱅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근 인기가 높은 거래소 코인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받는 바이낸스코인(BNB)에 대해서는 “지금도 바이낸스 거래소 내에서 거래 수수료를 지불하는 등 여러 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앞으로 실물경제에서도 실제 사용처를 더 늘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바이낸스는 이미 호주 기업과도 제휴를 맺어 호주내 주요 공항에서 BNB를 사용해 지급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저우 CFO는 “앞으로는 이 BNB를 세계 곳곳에서 쓸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생태계 내에서 우리가 제공하는 여행이나 이커머스 등 다른 분야에서도 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트멕스(BitMEX)라는 강자가 지위를 굳히고 있는 암호화폐 선물시장 진출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저우 CFO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우리도 역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선물 등과 같은 파생상품 출시를 고려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현재 서비스하는 비트코인 선물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비트멕스는 비트코인 선물 투자자들에게 100배나 레버리지를 주고 있는데 우리는 이같은 리스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파생상품을 개발하는데 있어서는 특히 규제나 법적 문제 등 고려할 게 더 많은 만큼 상품 개발부터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