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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성기 송승현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국내 재산 압류 신청이 법원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협상을 최우선으로 하는 만큼 압류 재산 현금화 등 당장 `실력 행사`에 나서지는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국제법 조치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한 터여서 레이더 갈등을 비롯해 한·일 양국 관계가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민간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별도 기금 조성 등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범 기업 국내 자산 압류 신청 첫 승인…실력 행사 보단 협상 우선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지난 3일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측 변호인단이 신청한 신일철주금 한국 자산 압류신청을 승인했다. 변호인단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확정 판결에도 신일철주금이 손해 배상을 하지 않자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측이 압류 절차에 들어간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은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 주식이다. PNR은 신일철주금의 전신인 신일본제철이 2008년 포스코와 제휴해 설립한 제철 부산물 자원화 전문업체로, 변호인단은 신일철주금이 PNR주식 234만여주(110억원 상당)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신일철주금이 계속 피해자 측과 합의하지 않고 있어 압류된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 신속히 협의에 나서라”고 거듭 촉구했다.
한·일 갈등 심화…정부 차원 해법 모색 필요
그러나 일본 정부가 강경 대응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신일철주금 측이 피해자 배상 문제에 적극 나설 가능성은 낮다. 신일철주금 측은 “일본 정부와 협의하면서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문제와 관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직접 강경 대응 방침을 시사하면서 양국 간 외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가 지난 6일 “의연한 대응을 하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검토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밝힌 데 이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도 “부당하게 일본 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해당 기업에 불이익이 생길 경우 즉각 대응책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질 않으면서 피해 배상을 위한 별도 기금 조성 등 정부 차원의 해법 모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관계부처 간 협의와 민간 전문가들과의 의견 수렴을 거쳐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아래 외교장관 간 전화 통화 등의 계기에 우리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하고 일본 측의 신중한 대응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별도 기금 마련 등을 포함해) 여러 대책을 심도있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