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지친 백성 달래고 '불교 미술 르네상스' 연 승려 예술 한자리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
국내외 기관 작품 145점 대거 출품
"조선 후기 문화 풍부하게 한 불교미술 집중 조명"
  • 등록 2021-12-06 오후 7:34:08

    수정 2021-12-06 오후 7:34:08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흔히 조선시대는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으로 불교가 쇠퇴한 것으로 알려져왔다. 지금껏 이 시기의 불교미술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특히 임진왜란(1592~1598) 이후의 조서 후기에는 불교 미술이 활발히 제작돼 당시 문화를 떠받치는 하나의 축을 이뤘다. 승려 장인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인 사찰에서 열린 미술 세계를 펼쳐 보였다. 불화·불상 등에 담긴 이상향에 대한 꿈은 오랜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치유와 안식을 줬다. 자연스레 불교미술은 당시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어준 숨은 주역이됐다.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7일부터 내년 3월 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조선시대 불교미술을 조성한 승려 장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살펴보는 특별전‘조선의 승려 장인’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국내외 27개 기관의 협조를 받아 국보 2건, 보물 13건, 시도유형문화재 5건 등 총 145건을 출품하는 대규모의 조선시대 불교미술전이다. 전시된 작품의 제작에 관여한 승려 장인은 모두 366명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 승려장인과 불교 미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에 활동한 조각승 단응이 1684년(숙종 10)에 불상과 불화를 결합해 만든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은 이번 전시를 위해 337년 만에 처음으로 사찰 밖으로 나왔다. 또 붓의 신선으로 불렸던 18세기 전반의 화승 의겸이 1729년(영조 5)에 그린 ‘해인사 영산회상도’(보물), 18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화승 화련이 1770년(영조 46)에 그린 ‘송광사 화엄경변상도’(국보)도 서울 전시는 처음이다.

조선 후기에 불교미술은 전국 사찰에서 활발히 제작됐다. 실제 현재 전국의 사찰에는 이때 만든 수많은 불상과 불화가 전한다. 그중에는 다채롭고 화려하며 수준 높은 작품 또한 적지 않다. 뛰어난 작품은 대다수 승려 장인의 손에서 탄생했다. 승려 장인은 전문적인 제작기술을 지닌 출가승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분야의 승려 장인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신앙의 대상인 부처를 형상화하는 조각승과 화승이 중심이 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조선 후기의 조각승은 1000여 명이고, 화승은 2400여 명에 이른다”며 “이처럼 많은 수의 승려 장인이 활약했던 이 시기는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르네상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가장 먼저 들어서면 종교미술 제작자로서 일반 장인과 구별되는 승려 장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458년(세조 4) 작 경북 영주 흑석사 소장 ‘법천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은 도화서 화원 또는 관청 소속 장인이 제작한 조선 전기 불교미술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달리 1622년(광해군 14)의 ‘목조비로자나여래좌상’(보물)은 조각승 현진을 비롯한 승려 장인들이 협업하여 만든 기념비적인 상으로서 조선 후기 불교미술의 제작방식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 중국 불화 및 일본 불상의 제작자와 비교하여 승려 장인이 공동으로 불상과 불화를 만든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조선 불교미술의 특징임을 제시한다.

승려 장인의 공방과 작업과정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다. 1775년(영조 51) 작 ‘통도사 팔상도’ 4점(보물)과 그 밑그림에 해당하는 초본을 나란히 비교 전시해 스케치가 불화로 완성되기까지의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컴퓨터 단층 촬영(CT) 결과를 이용하여 기존에 소개된 적 없는 불화 초본과 목조불상의 내부 구조도 공개한다.

대표적인 조각승과 화승의 중요 작품들을 집중 조명해 조선 후기 불교미술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조각승 단응이 만든 ‘마곡사 영산전 목조석가여래좌상’(1681년)과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1684년), 화승 의겸이 그린 ‘해인사 영산회상도’(1729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활약한 화승 신겸의 ‘고운사 사십이수관음보살도’(1828년) 등을 선보이는 자리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불상과 불화들을한 자리에 모은 것으로 좀처럼 모이기 어려운 명작들이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불교미술과 전통미술의 만남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포함한 조선 후기 불·보살상 7점과 설치미술가 빠키(vakki)의 작품 ‘승려 장인 새로운 길을 걷다’를 함께 전시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 공간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 미래로 나아가는 불교미술의 새로운 면모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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