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소규모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69세)는 경기 둔화와 소비 감소로 매출 감소를 겪던 중 B저축은행에서 받은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9%대로 올라 당장 다음 달 이자 납부조차 막막해졌다. 다행스럽게도 B저축은행은 A씨의 채무 상환 의지가 강하고 그동안 연체 없이 이자를 성실히 낸 점, 매출 감소와 금리 상승이 가중돼 일시적으로 자금 흐름이 어려워진 상황 등을 고려해 6개월간 대출 금리를 5%로 인하해주기로 했다.
정부 지원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기초생활 수급자 C씨(67세)는 목돈이 필요해 D저축은행에서 임대아파트 보증금 담보대출 1100만원을 받았다. 곧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상황이지만 생활비가 부족해 2개월째 이자를 연체하고 대환 대출도 어려워졌다. 당장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보증금으로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데 남은 자금으론 이사할 집조차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D저축은행은 C씨와 상담을 통해 정부지원금 외 소득이 없어 다른 금융회사에서 새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사정과 보증금 담보에는 이상이 없는 것을 감안해 기존 대출을 장기 대출(5년)로 전환하는 자체 프리워크아웃을 승인했다.
지난해 저축은행 업권에서 5000억원이 넘는 채무 조정이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중앙회는 작년 자체 채무 조정 제도를 통해 5002억원 규모의 채무 조정을 실행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는 전년(2184억원)보다 130%(2818억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분기별로 보면 1분기 1013억원, 2분기 760억원, 3분기 1385억원, 4분기 1844억원의 채무 조정이 이뤄졌다.
금감원은 “채무 조정 대부분(79.8%)은 연체 발생 전 취약 차주에게 이자 감면, 금리 인하, 원리금 상환 유예 등 선제적 금융 지원을 제공한 것”이라며 “실직·휴폐업·질병 등의 사유로 일시적인 채무 상환 어려움을 겪는 차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3개월 미만 연체 지원 비중은 9.6%, 3개월 이상은 10.6%였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금융재기지원 종합상담센터와 상담반에서 이뤄진 상담은 모두 2만6766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채무 조정 상담은 2만5030건(자체 채무 조정 2만1822건, 공적 채무 조정 3208건), 서민지원 대출 상품 등 금융지원 안내는 1736건이다. 금감원과 저축은행중앙회는 앞으로 우수 저축은행·임직원 표창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방안으로 저축은행의 채무 조정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또 오는 10월 시행하는 개인채무자보호법에 따른 채무 조정 활성화에 대비해 금융회사 내부기준을 마련하는 등 관련 제도를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채무 조정 활성화는 대출 금액 3000만원 미만의 연체 채무자가 금융 회사에 채무 조정을 요청할 수 있으며 이때 금융회사는 10영업일 내 결정 내용을 통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앞으로 채무 조정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저축은행이 연체 채권을 매각할 때도 연체 차주에게 채무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연체 차주에게 충분히 안내해 차주 보호 절차를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