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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19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편의점 세븐일레븐 소공점.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이 A사의 1900원짜리 컵커피를 사들고 계산대 앞으로 갔다. 그가 꺼낸 건 1000원짜리 지폐 두 장과 카드 한 장. 그러자 편의점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2000원을 건네받고, 그 카드에 바코드를 찍었다.
차 국장이 내민 카드는 동전적립 교통카드. 그러니까 지폐 2000원을 주고나서 잔돈 100원을 거슬러 받은 게 아니라 카드에 적립을 받은 것이다. 현금 거래에서 동전 자체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편의점 입장에서도 굳이 동전을 준비하지 않아도 돼 편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전 없는 사회’ 20일 시범사업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가 현실화한다.
차 국장의 시연은 한은이 그린 동전 없는 사회의 초기 모습이다. 당장 오는 20일부터 전국의 주요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할 수 있다.
19일 한은에 따르면 한은은 현금 거래 후 생긴 잔돈을 교통카드 등 선불전자지급 수단에 적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시범사업을 20일부터 실시한다. △CU(전국 1만1300여개) △세븐일레븐(전국 8800여개) △위드미(전국 2000여개) 등 편의점과 △이마트(전국 150여개) △롯데마트(전국 800여개) 등에서 가능하다.
세븐일레븐에서는 캐시비(이비카드), 네이버페이포인트(네이버), L.Point(롯데멤버스·7월 중 시행) 등을 사용 가능하다. 위드미와 이마트에서는 SSG머니(신세계I&C)를, 롯데마트에서는 L.Point(롯데멤버스)를 각각 쓸 수 있다.
한은이 이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동전이 ‘애물단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동전이 잘 쓰여지지는 않는데, 한은은 매년 꾸준히 동전을 제조하고 있다. 그 제조 비용만 한 해 수백억원 규모다. 지난해 이 비용은 537억원이었으며, 2014년과 2015년은 각각 408억원, 539억원이었다.
이 때문에 한은은 그동안 ‘잠자는’ 동전을 끄집어내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범국민 동전교환운동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가시적인 진전은 미미하자 아예 동전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다.
“재래시장서도 활용 방안 고민”
다만 이 시범사업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확산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기존에 갖고 있는 체크카드에 동전을 적립할 수 있는 방식보다 시범사업은 다소 불편하다는 평가가 많다. 한은의 설문조사에서도 계좌입금 방식이 더 선호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전을 많이 쓰는 어르신들이 이런 디지털 방식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한은 관계자는 “계좌입금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면서 “재래시장 혹은 노점상에서도 전자지급 수단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전을 쓰는 세탁소, 세차장, 노래방 등의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차 국장은 “동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라면서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건값이 1000원 단위로 책정되면서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적립카드를 쓰면 오히려 10원 단위로 물건값을 책정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물가에 대한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한은은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