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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선 승리 후 리라화 가치 4% 하락
3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달러·리라 환율은 이날 1달러에 21.01리라까지 상승했다. 달러·리라 환율이 달러당 21리라를 넘어선 건 사상 처음이다. 연초 환율(달러당 18.81리라)과 비교하면 5개월 만에 화폐가치가 10% 넘게 떨어진 셈이다.
특히 지난 28일 튀르키예 대선 결선 투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된 이후 리라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대선 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물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금리를 유지하는 비정통적 통화정책으로 리라화 가치 하락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총재 경질 등 중앙은행에 대한 노골적 개입도 마다치 않았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한 2018년 달러당 5리라였던 환율은 네 배 가까이 급등했다.
그나마 선거 기간엔 표심을 의식,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대선 승리 후엔 이마저 포기할 수 있다는 게 시장 우려다. 대선 결선 투표 이후에만 리라화 가치가 4% 하락한 이유다.
대외 여건도 녹록지 않다. 튀르키예는 3월에만 45억달러(약 5조9500억원)에 이르는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 연초 대지진으로 경제에 치명상을 입은 상황에서 에너지 등 수입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외화가 늘기 때문에 환율이 하락한다. 지난해 말 기준 4590억달러(약 607조원)에 달하는 대외 부채도 리라화 방어에 부담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리라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옵션 트레이더 중 56%가 올 4분기 달러당 30리라까지 리라화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보다 리라화 가치가 50% 가까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모건스탠리 역시 리라화 가치가 올해 안에 달러당 28리라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흐름에 투자 심리도 움츠러들고 있다. 로빈 브룩스 국제금융협회(II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선거가 끝나고 튀르키에 리라화는 급격한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것을 보고 딱 한 가지만 한다. 포트폴리오에서 튀르키예를 영원히 빼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통적 통화정책 에르도안 변화할까
변수가 있다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제정책팀 진용을 개편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로이터통신은 다수의 튀르키예 고위관료를 인용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메흐메트 심섹 전(前) 부총리를 부통령이나 재무장관으로 기용할 게 확실시된다고 이날 보도했다. 금융권 출신인 심섹 전 부총리는 과거 재무장관 등을 지내며 정통적 경제정책을 펴 시장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중용된다면 비정통적 경제정책을 밀어온 에르도안 정부가 방향을 전환할 것이란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KNG 증권의 카그리 쿠트만은 “심섹이 새 재무장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신호를 주기 위해선 믿을 만한 이름이 중요하다”며 “심섹이나 그와 유사한 (성향의) 인물이 요직을 맡는다면 그것은 큰 움직임”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