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에 따르면 리 전 총리는 중국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지난 26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겪었고, 응급 구조에도 결국 다음날 0시 10분 숨졌다.
리 전 총리는 2007년부터 제17~19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고, 2013년부터 10년간 총리직을 수행했다. 이때 경제정책을 총괄하며 고도 성장을 이끌었다. 올해 3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리 전 총리는 퇴임 6개월 만인 지난 9월 간쑤성을 방문하면서 공개 활동에 나서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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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중국 동부 안휘성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베이징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베이징대 경제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그래서 줄곧 경제통으로 꼽혔다. 영어 역시 유창했다.
시 주석이 집권한 이후 중앙정치국 상무위 중심의 집단 지도 체제가 약화하면서 리 전 총리의 권한은 점차 축소됐고, 결국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그가 ‘비운의 2인자’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다만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중국 민중의 호응을 얻었다.
리 전 총리는 2020년 5월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중국인 6억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8만원)에 불과하다”며 노점상 활성화를 주장했다. 당시는 시 주석이 ‘샤오캉’(중산층) 사회를 건설했다는 성과를 강조하던 시기여서, 리 전 총리가 시 주석의 성과를 부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공산당은 관영 매체에 ‘노점 경제’라는 단어를 쓰지 말도록 지시했다.
그 때문인지 리 전 총리가 퇴임 당시 고별 인사를 하는 영상이 중국 당국의 검열을 받아 삭제되자 중국 지도부가 ‘리커창 지우기’에 나섰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배리 노턴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리 전 총리는 시 주석에 의해 권력과 영향력을 박탈 당했다”며 “그의 죽음이 중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그의 인기를 반영하듯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서는 네티즌들이 “너무 갑작스럽다” “믿고 싶지 않다” “편히 가세요” 등의 메시지를 올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워싱턴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날 숨진 리 천 총리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삼가 명복을 빌며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