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확인’해야 ATM서 현금인출‥“대형 시중은행부터 추진 필요”

  • 등록 2014-09-30 오후 2:35:54

    수정 2014-09-30 오후 7:12:30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회사원 김씨(32·여)는 지난달 검찰이라고 사칭한 한 사기범의 전화를 받고 통장 비밀번호를 제외한 정보를 사기범이 알려준 가짜 검찰청 사이트에 입력했다. 김씨는 남자의 요구대로 A·B은행에 보관하고 있던 예금도 C 통장으로 모두 옮겼다. C은행에 가서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도 새로 발급받았다. 사기범은 김씨에게 개인정보를 보호해주겠다며 OTP번호를 4번 물었고 이 사이 김씨의 통장에서 3000만원이란 거액이 빠져나갔다. 남자는 김씨가 알려준 정보를 바탕으로 C은행에서 김씨 명의로 된 공인인증서를 재발급 받아 인터넷뱅킹을 통해 계좌에 있던 돈을 모두 대포통장으로 옮긴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김씨는 대포통장에 있는 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은행에 지급정지 신청을 했지만 돈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당국, 대형 시중은행부터 우선 지문 인식 시스템 적용

금융당국이 김씨와 같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막기 위해 지문 인식을 거쳐야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한다. 당국은 대형 시중은행에 우선 이 시스템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효과를 검증한 뒤 향후 다른 시중은행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한 대형 시중은행과 ATM기에 지문 인식 시스템을 장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당국 내부에서도 시중은행 전체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입장이 갈리자 일단 대형 시중은행에 우선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ATM기에 지문 인식 시스템을 장착하는 것에 대해 인권침해 등 논란이 있지만 사실 금융사기를 막을 수 있는 최고의 대안”이라며 “이 시스템이 성과를 내 고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면 자연스레 다른 시중은행으로 확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문 인식 시스템, 금융사기 줄일 유일한 대안”

금융당국이 이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것은 사실상 이 방법 외엔 금융사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보이스피싱 금융사기는 매년 평균 5600건 가량 발생한다.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건수는 4만4816건. 피해액만 4758억원에 이른다. 올 들어선 5월까지 총 2340건 발생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나 증가했다.

금융사기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은 사기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의 사례처럼 정부가 사기범이 금융정보를 가로채 인터넷뱅킹에 가입할 수 없도록 공인인증서 재발급 절차를 강화하고 300만원(누적)이 넘는 돈을 이체할 땐 추가인증을 거치도록 했지만 스미싱과 같은 신종 수법에 의해 모두 뚫렸다. 사기에 이용되는 대포통장을 없애는 게 금융 사기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돈을 받고 본인 통장을 넘기는 수요가 적지 않은 데다 대포통장 주인을 잡더라도 법적으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당국은 금융정보가 털려도 마지막 관문인 최종 인출 단계만 지키면 금융사기를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ATM기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90% 이상이 100만원까지 현금을 인출하는 만큼 100만원 이상의 금액을 인출할 때만 비밀번호와 함께 지문 인식을 거치도록 제한적으로 활용하면 소비자 불편은 물론 인권침해 우려도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실제 도쿄 미쓰비시 UFJ은행은 카드 도난, 위·변조 사고예방을 위해 ATM기에 손바닥 정맥으로 본인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지난 2004년 도입했다. 현재 전체 ATM기 8336대 중 7731대(92.7%)에 손바닥 정맥 센서가 설치돼 있다. UFJ은행의 경우 손바닥 정맥을 통해 본인인증을 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뒤 금융사고가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손바닥 정맥으로 본인인증을 하는 ATM기가 8만여 개 있는데 효과가 상당하다”며 “인권침해 논란도 있지만 얼마든지 이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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