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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영화에서처럼 문고리를 부수면 문이 열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더군요”
박재홍(30)씨는 “불이 난 오피스텔에 사람이 갇혔다는 것을 알고 뛰어올라가 소화기로 문고리를 때려 부쉈는데 문이 꼼짝을 안해 당황했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사실을 체감한 순간”이라고 했다.
불길이 치솟는 화재현장에 달려가 사람을 구한 의인(義人) 박재홍씨를 서울 관악구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만났다. 박씨의 직업은 배우다.
“사람이 갇혔다” 소리에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지난 5월 19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오피스텔 5층에서 큰 불이 났다. 박씨는 불이 난 오피스텔 건너편 카페에서 지인을 만나고 있었다.
“불이야”라는 고함 소리와 함께 건물 5층에서 검은 연기가 쏟아지는 모습을 봤지만 박씨는 큰 불은 아니겠거니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불길이 건물 전체로 번지기 전이었지만 사람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5층까지 달려 올라갔지만 복도는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고 불길이 시작한 502호 문은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박씨는 복도에 비치된 소화기를 들어 문고리 내리쳤다. 문고리는 부서져 나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불과 10cm도 안되는 문 너머에서 사람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더군요.”
박씨는 포기하지 않고 인근 공사현장으로 달려가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와 망치를 구했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김영진(45)씨가 박씨를 도왔다. 문을 뜯어내니 현관 앞에 20대 남성이 혼절한 채 누워 있었다.
박씨는 “60kg가 족히 넘는 성인 남성을 들쳐업고 1층까지 뛰어 내려왔다는 게 지금도 신기할 지경”이라고 했다. 당시 연기에 질식해 정신을 잃었던 이 남성은 건강하게 생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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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한 사실은 일주일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서울 관악소방서는 박씨에게 인명구조와 화재확산을 막는데 기여한 공로로 표창장을 수여했다.
“때마침 이병헌 감독의 영화 ‘극한직업’에 출연해 촬영 중이었어요. 함께 출연한 류승룡, 진선규 선배가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주신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박씨는 이 영화에서 ‘마약조직원1’ 로 출연한다.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이다.
박씨는 현재 김주한 감독의 영화 ‘사자’ 촬영에 바쁘다. 8년차 배우인 박씨는 이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갖고 출연한다. 배역 이름은 ‘황선호’. 젊은 나이에 조직 우두머리에 오른 깡패다.
박씨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제 배우로서 본격적인 시작점에 서 있다고 생각해요. 늘 고민하는 배우가 되려고 합니다. 의인 박재홍과 더불어 배우 박재홍으로도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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