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황수연 기자] 요즘 ‘원조’ 맛집은 두 집 걸러 한 집꼴이다. 여기도 저기도 손님 몰이에 원조를 내거는 탓이다. 낯선 피서지에서 진짜 원조를 발라내기란 더 어렵다. 까딱하면 맛도 없는데 터무니없는 값과 서비스로 바가지 쓰기 십상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최근 반가운 책 하나를 냈다. 전국 50년 이상 대물림한 원조 한식당 100곳을 소개했다. 전통과 원조를 내건 전국의 한식당들 속에서 검증된 진짜 원조집을 찾을 기회다.
한여름 보양식, 냉면과 삼계탕에도 ‘명품’이 있다
뼛속까지 찬기를 들여줄 ‘냉면’의 조상격은 저 멀리 부산에 있다. 해운대를 찾았다가 부담 없이 시원한 한 끼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암동 ‘내호냉면’이 제격이다. 무려 100세에 달하는 최고(最古) 집. 1919년 북한 흥남에서 ‘동춘면옥’이란 이름으로 태어나 피난 나선 창업주를 따라 부산까지 내려왔다.
철저하게 정통 북한식 냉면을 고집하는 터라 실향민들이 주로 찾는다. 100% 국내산 고구마 전분을 이용해 뽑는다는 쫄깃한 면발, 한우암소의 사골과 아롱사태 고기를 넣어 진하게 우려낸 육수의 깊은 맛으로 하루 평균 500그릇이 뚝딱 팔린다. 함흥냉면이 대표이지만 부산의 별미 밀면도 간판 메뉴다.
냉면에 더해 무더운 여름철, 원기를 되찾아줄 설렁탕에도 전설 같은 집이 있다. ‘이문 설농탕’은 올해로 100년하고도 8년이나 더 됐다. 무려 4대째 맛 내림으로 서울시 음식점 허가 제1호다. 그만큼 단골들도 위인급이다. 마라톤 귀재 손기정부터 김두한, 초대 부통령 이시영 등이 대표적.
이 집에선 자연에서 방목한 한우를 주로 쓴다. 하루 반나절 이상을 끓여 국물을 우려내는데, 그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니 그야말로 일품이다. 설렁탕 맛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한다면 큰 오산이다. 표준어인 설렁탕 말고 ‘설농탕(雪濃湯)’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는 데도 흰 눈처럼 뽀얀 국물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한다. 하지만 주인인 전성근(67)씨의 비법 소개는 ‘쿨’하다. “좋은 재료와 오래 끓이는 정성, 그 이상의 비법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 단계 더 고급화된 고단백 고철분 보양식, 영양탕의 원조는 60년을 꿋꿋이 버텨온 대전의 ‘평양옥’이 진리다.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그날그날 고기를 공급받아 신선도는 가히 최상이고 먹는 느낌도 부드럽고 쫄깃하다. 몇 가지 약재가 들어가 하루 24시간 이상을 우려내는 육수 때문에 일 년 내내 가마솥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50년 전통 조리법으로 특허까지 받은 떡갈비는 전남 ‘덕인관’에서 맛볼 수 있다. 덕인관 만의 핵심 비결은 갈비뼈에 붙은 갈빗살에 무려 60번 정도의 잔 칼집을 내주는 것. 양념장이 잘 배고 먹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다. 3차례의 양념 숙성과정을 거친 떡갈비는 특허로 출원되기도 했다니 떡갈비의 보증수표라 할 수 있다.
1955년 이후 지금껏 연탄으로 돼지갈비를 구워와 매월 1000여 장의 연탄은 기본으로 쓴다는 ‘남들 갈비’. 연탄불에 은근히 익혀 기름을 뺀 돼지고기의 맛이 그렇게 연해 소갈비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되던 날 마지막까지 먹었다는 양념갈비 집으로 칠순을 넘긴 나이의 충남 예산 ‘소복식당’은 청와대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100인분 정도를 준비했다고 한다. 양념갈비뿐 아니라 곁들여 나오는 김치, 어리굴젓 등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손맛이 그대로 담겨 있다. 11월부터 4월까지 나오는 서해 토종 굴회는 계절메뉴로 꼽힌다. 황수연 기자 ppangshu@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