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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행정소송을 내면서 그날의 사정이 자세히 밝혀졌다. A씨는 그날 밤에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갔는데, 사실혼 관계이던 B씨가 술에 취한 채 시비를 걸었다. B씨는 가정폭력 재발 우려 대상자로 등록돼 있을 만큼 폭력적이었다. A씨는 집 밖으로 나와서 주차해뒀던 차의 운전석에 앉아서 B씨의 화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B씨가 따라나와서 A씨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A씨가 내리지 않자 B씨는 각목으로 차량 유리창을 깨뜨리며 나오라고 했다. 깨어진 유리파편이 A씨에게 쏟아져 내렸다. 이대로면 차가 더 망가지고, 자신마저 크게 다칠 것으로 생각한 A씨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렇게 이동한 거리는 10m 남짓.
사건의 쟁점은 A씨의 행위가 형법상 ‘긴급피난’에 해당하는지였다. 비록 형사소송에서 다룰 사안이지만, 행정소송에서도 무시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형법은 ‘자기나 타인이 위험을 피하려고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벌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긴급 피난을 인정한다. 다만 해당 행위가 ▲유일한 수단이고 ▲피해를 적게 발생하고 ▲얻은 이익이 잃은 이익보다 크고 ▲사회적으로 적합해야 한다 등의 깐깐한 조건이 붙는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은 A씨가 경찰청을 상대로 “자동차 운전면허 취소를 없던 일로 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최근 판결했다.
물론 형사재판에서 A씨의 유죄가 확정됐지만, 그 재판에서는 ‘긴급피난’이 쟁점이 아니어서 판단 대상이 아니었다.
앞서 A씨의 차량을 파손하고 폭력을 행사한 B씨는 피해자(A씨)의 처벌불원 탓에 제재를 피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