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이후 시공 계약 해지가 잇따르고, 아직 화정 아이파크와 관련된 행정 처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번 결단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HDC현대산업개발이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정몽규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겠다”
4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산업개발은 입주예정자의 요구이신 화정동의 8개동 모두를 철거하고 새로 아이파크를 짓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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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저희 현대산업개발은 고객에게 안전과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회사의 존립 가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조금이라도 안전에 관한 신뢰가 없어지는 일이 있다면 회사에 어떠한 손해가 있더라도 고객과의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산업개발은 아이파크를 사랑하시는 모든 고객과 국민 여러분의 불안감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전날 밤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실무진들도 당일 오전에서야 해당 일정을 전해들었다는 후문이다. 정 회장은 전날 HDC현산 경영진과 만남을 갖고 최종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HDC현산은 무너진 201동을 비롯해 나머지 7개동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을 거친 후 재시공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을 뒤엎고 전면 철거를 결정한 데에는 화정아이파크 논란이 계속 이어지면 신뢰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논란의 불씨를 서둘러 제거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다.
현재 화정아이파크 입주예정자들은 붕괴사고가 발생한 201동과 동일한 자재와 공법으로 지어지는 나머지 7개동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며 철거 후 재시공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붕괴사고 이후 기존 수주 계약을 체결한 사업장에서도 보이콧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광주 운암주공3 △경기 광명11구역 △부산 서금사A △경기 뉴타운맨션삼호 △경기 곤지암역세권 △대전 도안 아이파크시티2차 등에서 HDC현산과 계약을 해지했다. 서울 동대구문 이문3구역,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 울산 남구 B-07등 가까스로 시공권 방어에 성공한 곳도 있지만 시공사 교체 요구는 이어지고 있다.
2000억 추가 비용 예상..하반기 행정처분 남아
차기 정부 역시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HDC현산을 압박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29일 현장을 찾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가해 기업은 망해야 하고 공무원들은 감옥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원 후보자는 전면 철거 소식을 접하자 SNS를 통해 “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전면철거 재시공’이라는 고뇌에 찬 결단이 우리나라의 안전문화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남기기도 했다.
실적 부진 역시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HDC현산은 8개동 전면 철거로 2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철거 후 준공까지 70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입주 지연 비용과 입주예정자 주거 대책 등을 모두 포함해 추정한 금액이다.
HDC현산은 화정 아이파크 사고와 관련해 지난해 이미 연결기준 1755억원의 추정 손실을 반영했다. 이에 지난해 영업이익은 3300억원으로 전년(5850억원)보다 43.6% 감소했다.
지난 1분기의 경우 사고 관련 손실 비용을 반영하지 않았는데도 영업이익이 68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2.4% 줄었다. HDC현산은 지난해 3분기 660억원을 기록한 이후 3분기째 1000억원을 밑돌고 있다. 올해 1분기 신규 수주액도 6550억원으로 전년동기(1조1510억원)대비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