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기업의 소득 대비 빚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데다 빚의 대부분이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자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빚 상환 능력이 뚝 떨어지는 등 부실 위험은 쌓여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금융안정 상황’을 보고했다.
작년말 GDP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215.5%(추정)로 전년말보다 18.4%포인트나 상승했다. 수준과 증가폭 모두 사상 최대치다. 명목GDP 성장세가 작년 1분기 1.0%를 찍은 이후 2~4분기 0%대로 성장한 반면 가계신용과 기업신용 증가율은 작년 4분기에만 각각 9.1%, 10.1% 급증했다.
가계·기업 신용규모가 장기추세선과 벌어져 있다. GDP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작년 103.6%인데 장기추세선(97.7%)보다 5.9%포인트 더 높아졌고 기업신용 비율의 갭도 9.2%포인트(장기추세선 102.7%, 작년 111.9%)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2008년 2분기 +1.7%p, 2009년 3분기 +10.6%p)보다 높거나 그에 근접한 수준이다.
가계 빚 만큼 기업 빚 부실 위험도 커지고 있다. 기업신용은 2153조5000억원(추정)으로 1년간 10.1% 증가했다. 회사채는 신용경계감이 커지면서 순발행규모가 11조4000억원으로 전년(15조9000억원)보다 감소했지만 은행 등에서 빌린 금융회사 대출은 1359조4000억원으로 15.3%나 급증했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 개인사업자 대출이 각각 15.3%, 15.5%로 많았다. 증가율만 따지면 가계 빚보다 더 많이 늘어난 것이다.
기업 역시 코로나 충격에 재무건전성이 나빠졌다. 영업활동으로 돈을 벌어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은 2019년 4.3배에서 2020년 4.5배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로 비대면 확대에 수혜를 입은 전기전자 업종으로 인한 것이고 전기전자 업종을 제외하면 이자보상배율은 3.6배에서 3.1배로 하락한다. 부채비율은 부채가 급증했음에도 영업이 잘 안 되면서 외상매입금, 지급어음이 감소, 작년 3분기말 79.1%로 2019년말(78.6%)보다 상승폭이 제한됐다. 기업의 은행 대출 연체율도 작년말 0.4% 수준에 불과하다.
가계·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은행의 자산건전성은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정부의 원리금 상환유예조치, 리스크 관리 강화로 작년말 0.64%로 1년전보다 0.13%포인트 하락했다. 상호금융의 경우 고정이하여신비율이 2.08%에서 2.17%로 상승했지만 보험, 저축은행, 카드사 등에서도 전년말 대비 하락세를 보였다.
대출이 부실화됐을 경우 은행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자본비율 등은 기준치를 모두 크게 상회했다. 일반은행과 특수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은 각각 17.1%, 15.4%로 전년말(15.9%, 14.4%)보다 1.0%포인트, 1.2%포인트 상승했다. 대손충당금 적립비율도 대출 부실화에 대비, 선제적인 충당금 적립으로 대폭 늘어났다. 일반·특수은행은 각각 116.3%, 111.8%에서 146.8%, 134.2%로 상승했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한시적인 규제 완화(100→85%), 기업의 대기성 자금 증가 등으로 올해 1월 일반은행이 95.1%, 특수은행이 96.9%로 각각 17.3%포인트, 12.7%포인트 하락했다.
그러나 한은은 “유동성 관련 규제 완화 조치가 종료될 경우 은행의 대출 여력 축소, 조달 비용 상승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은 분자가 한 달간 은행에서 빠겨나갈 수 있는 현금 유출액이고 분모가 고유동성자산인데 규제 완화 조치가 종료되면 유동성이 떨어지는 가계나 기업 대출을 덜해 분모를 줄이거나 높은 금리를 주는 정기예금 특판을 통해 분자를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채 발행이 늘어, 조달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