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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가 신약의 약가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신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10여년에 걸쳐 적게는 수천억에서 많게는 조단위의 연구개발 자금이 투입된다”면서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탄생한 신약도 정부의 현실성없는 약가정책에 신약에서 수익을 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저가 기조 일변도의 신약 약가 정책으로 어렵사리 개발에 성공한 신약의 상업화를 포기한 케이스도 불거졌다. 실제 동아에스티(170900)는 지난 2020년 6월 자체개발한 항생제 신약 ‘시벡스트로’의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회사측은 시판후조사(PMS)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자진 취하했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낮은 약가가 결정적 이유였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대화제약은 항암주사제를 경구제로 혁신시킨 신약 ‘리포락셀액’을 개발해 주목받았지만 낮은 약가 책정으로 협상이 수년째 결렬되면서 현재 출시가 불투명하다.
국내 제약업계는 현행 약가제도가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노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신약개발의 의지를 꺾고있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의 경우 신약개발에 평균 14년간, 500억원의 비용이 투입되지만 연구개발의 결실인 신약의 가치가 과도하게 평가절하돼 신약 개발 유인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신약의 평균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대만을 포함한 국가들과 비교해 평균 42%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내 신약의 74%는 이들 국가를 통틀어 최저가격으로 책정된 것으로 집계됐다. 심지어 일부 국내 신약의 약가는 복제약인 ‘제네릭’ 에도 못미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더욱이 신약의 약가를 인하하는 정책은 횟수의 제한도 받지 않아 업계의 어려움을 가중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LG화학(051910)의 ‘제미글로정’, ‘제미메트서방정’의 경우 사용량이 확대될 경우 약가가 인하되는 ‘사용량-약가협상’ 제도가 적용되어 출시 이후 6회나 약가가 인하됐다. 사용량-약가협상 제도는 신약의 사용량이 늘어나면 기계적으로 횟수에 제한없이 약가 인하 협상에 나서야 하는 약가정책이다.
14번째 국산신약인 일양약품의 항궤양제 ‘놀텍’은 PPI제제로 지난 2008년 위산분비를 억제해 소화성궤양을 치료하는 효능을 입증하며 식약처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았다. 이듬해 2009년 12월 1405원의 보험약가를 받고 시장에 선을 보였지만, 지금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약가가 16.7%나 깎였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의 경우, 대부분이 대체약제 가중평균가 이하 또는 최고가 이하 수준으로 등재하여 건강보험재정을 절감하는데 이바지하였음에도, 지속적인 연구개발(R&D)로 투자비용 회수가 시작되지도 않은 채 사용범위 확대에 따른 약가인하, 제네릭 등재로 인한 약가 인하 등에 직면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낮은 국내 신약 약가는 국민의 건강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낮은 신약 정책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마진이 낮은 국내 시장에 대해 의약품 출시를 꺼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서다.
한국의 신약 접근성은 OECD 소속 국가들 가운데 말단인 35%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상업화에 성공한 신약 10개 가운데 6개는 정부가 제시한 약가가 지나치게 낮아 한국시장 발매를 포기했다는 얘기다. 주요 선진국인 미국(87%), 독일(63%), 영국(59%), 일본(51%)에 비해서도 한참 낮은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낮은 신약 가격정책으로 약효가 뛰어난 글로벌 제약사들의 신약 가운데 상당 부분을 국민들이 사용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서동철 중앙대 약대 교수는 “신약 약가는 최소한 기업들이 수익성을 확보할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해야 기업들의 신약개발 여력과 의지가 살아난다”면서 “특히 제네릭 약가 인하로 마련한 재원을 신약 개발을 지원하는 쪽으로 적극 정부가 나서야 제약강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