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상욱기자] "중국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중국경제의 긍정적인 부문만 너무 강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출간이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해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최근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저서를 집필한 홍인기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의 출간의 변(辯)이다. 지난 12월 대선이후 한국사회의 중심축이 20~30대로 이동했다는 소식들이 전해지는 가운데 환갑을 훌쩍 넘긴 증권계 원로가 퇴임이후 벌써 3번째 저서를 집필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증권연구원 연구실에 들어서자 책상에서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던 홍 전 이사장이 일어섰다. 흘낏 책상위를 보자 중국 관영 영자지인 차이나 데일리가 놓여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인 지 아직 인터넷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활자로 보는 게 편합니다. 여러 신문들을 꼼꼼히 읽다가 중요하다 싶은게 있으면 직접 스크랩해 두는 편이죠."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의 시장경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홍 전 이사장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그동안 연구해 온 중국시장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홍 전 이사장이 보는 중국 시장경제의 성공 가능성은 아직 50대 50이다. 연 8%의 경제성장, 25%이상의 수출증가율, 세계 2위의 외환보유국, 400억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 등 중국 경제를 지칭하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도사리고 있는 부실채권 증가, 실업률, 적자재정, 디플레 가능성, 경직된 환율체제, 빈부격차 등의 불안요인도 가볍게 넘길수 없기 때문이다.
"배경은 다르지만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과거 국가로부터 지원받았던 기업들의 부실이 은행으로 전가되면서 은행의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있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사회주의라는 특성 때문에 위안화의 자본거래가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점도 금융시장 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구요. 또 주식시장이 정체상태에 있는 것은 기업들의 지분을 국가가 대거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불안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중국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국내 기업의 경우 중국에 많이 진출해 있지만 금융회사, 특히 증권사들의 진출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중국 증권시장이 당장은 정체된 측면이 있지만 중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지금부터 진출해야 합니다. 대폭적인 투자보다는 투자펀드를 이용하거나 중국 증권사와의 파트너쉽부터 제고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홍 전 이사장이 이번에 출간한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총 9개장과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의 거시경제와 재정·통화정책, 부실채권 처리과정, 중국의 WTO 가입후 당면한 과제와 문제점, 올림픽과 세계박람회 유치 등의 효과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짚어내고 있다.
또한 중국 증권거래소 설립과정, 감독체계 등 증권시장 전반에 대한 소개와 문제점 등을 분석하는 등 거래소 이사장 재직시절 축적한 경험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홍인기 전 이사장은 재무부 관료출신이다. 이재국 사무관과 증권보험국장을 거쳐 한화그룹 기획조사실장으로 직업을 바꿨다. 이후 동양증권, 대우조선, 동서증권, 한국산업증권 사장을 거쳐 93년부터 99년까지 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퇴임후에도 증권연구원 고문으로 있으면서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출강하는 등 관료생활과 증권업계에서 체득한 노하우를 후학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증권쪽에 오래 있었지만 처음 중국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막막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자료를 수집해서 읽고 연구하다 보니 어느덧 중국경제에 대한 시각이 잡히더군요. 그 과정에서 도와준 많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이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와도 대적할 자신이 생겼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 주제를 가지고 강의도 할 생각입니다."
퇴임후 일본경제와 중국경제에 대한 저서를 출간했는데 다음 차례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아이구 급하기도 하지. 이제 한숨 돌렸는데, 차차 생각해 봐야죠"라며 웃음 짓는 그의 얼굴에서 증권거래소 전 이사장의 모습이 아닌 이순(耳順)을 한참 넘긴 노(老)학자의 모습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