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구제금융이 너무 쉽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부 회사는 정부 돈을 받아 인수합병(M&A)로 덩치를 키운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구제금융의 사용처를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 계속되는 구제금융..점점 커지는 규모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국유화된 국책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는 연말까지 재무부로부터 자금 수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3분기 손실이 290억달러에 달하는 등 유동성이 급격히 말라붙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유동성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정부는 지난 9월 패니메이에 대한 지원금으로 조성한 1000억달러 중 일부를 투입할 전망이다.
신용카드 회사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부터 은행지주회사 전환 승인을 받았다. 재무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구제금융은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금융사들에 자금을 지원해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출시장은 물론, 위기의 진원지인 주택시장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돈만 쓰고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대마불사` 어디까지..자동차 업계도 요청
금융회사 뿐만 아니라 자동차 업계도 구제금융을 받을 기회를 모색중이다. 이들은 경제 위기 하에서 금융회사만 구제해 주란 법이 있냐는 입장이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 자동차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 6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 5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회는 앞서 차세대 에너지 차량 개발 등의 명목으로 250억달러 규모의 저리 대출 지원을 승인한 바 있다.
재무부는 아직까지 부실자산구제계획(TARP)를 통해 자동차 업계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자동차 업계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이란 점에서 조만간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에까지 공적자금이 투입될 경우 여타 산업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특히 다른 산업계가 이를 문제 삼으며 구제금융을 요구할 경우 정부가 어느 선까지 `대마불사`의 논리를 적용시킬 것이냐는 점도 문제다.
CNN머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 자동차 업계가 구제금융을 받더라도 회생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프레임 레비 스탠다드앤푸어스(S&P)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구제금융을 받더라도 사정이 나아지진 못할 것"이라며 "(경기후퇴로 인해)자동차 판매는 매달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늘어나는 재정적자..구제금융 여력은?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확대가 예상되는 가운데 과연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재정적자 확대와 세수 감소 속에서 공적자금을 어떤 식으로 조성할지가 관건이다.
지난 7일 미 의회예산국(CBO)은 새 회계연도를 시작한 지난 10월 한 달 동안의 재정적자가 232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CBO는 구제금융 비용과 경기부양책 규모 등을 고려할 때 2009 회계연도 재정적자 규모는 2008 회계연도에 기록한 사상최고치 4550억달러의 2배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는 구제금융은 재정적자를 키우는 주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전망기관인 글로벌인사이트는 구제금융이 올해 재정적자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1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구제금융 공적자금 조성을 위해서는 세금을 늘리는 수밖에 없지만, 경기가 하강기에 들어선 시점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진 나라가 사상 최대의 공적자금을 조성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지적도 이런 이유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이 점점 확대되면서 자금의 용처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 투입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어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11일 보도했다.
납세자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에서 정보에 대한 자유를 침해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도 정부 돈을 받아 어디에 쓰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AIG의 경우 계속해서 자금을 지원받으면서도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있어 부정회계 의혹마저 받고 있다.
찰스 슈머 상원의원은 "재무부는 구제금융과 관련한 충분한 기준을 세우지 않았다"며 "재무적으로 건전한 금융회사들이 구제금융을 받아 자금을 축적한 후 M&A에 사용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달 피츠버그 소재 은행인 PNC는 도산 위기에 처한 내셔널시티 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날 PNC는 정부에 77억달러 규모의 우선주를 매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 돈으로 회사의 덩치를 키우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회사들이 늘어날 수록 자금의 사용처도 불분명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이 구제금융 사용처를 명백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구제금융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