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산다)②산별교섭, 경쟁력에 毒되나

정치이슈에 2·3중 교섭구조
비용부담 가중, 파업 가능성 높아져
"대내외 악재 속 공멸 자초해선 안돼"
  • 등록 2008-05-29 오후 2:47:49

    수정 2008-07-09 오후 10:26:29

[이데일리 문영재기자] 미국 제네럴모터스(GM)가 또다시 '파업'이라는 덫에 발목을 잡혔다. 지난 2월부터 석달간 지속된 북미공장 및 부품업체의 파업으로 인해 자그마치 28억 달러, 36만대의 손실은 입은 것이다. 지난해 간신히 ‘1위 자리'를 지켜 낸 GM이지만 올해에는 일본의 도요타에게 그 자리를 넘겨줘야 할 판이다. 말 그대로 'GM의 굴욕'이다. 이는 GM이 지난 1931년부터 77년째 이어온 세계 판매 1위 자리를 도요타에 내주는 일대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GM의 추락과 도요타의 부상은 노사 상생의 흐름을 탈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특히 회사의 미래를 고려치 않는 선택은 결국 노사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동안 매년 수천억원의 손실을 감수하는 노사협상, 파업을 해 온 한국의 자동차 노사도 이제 값비싼 교훈을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편집자주>


`반목의 거듭이냐, 상생의 화합이냐`

올 상반기 노사관계의 화두는 단연 산별교섭이다. 올해는 대규모 기업별 노조가 대거 산별노조로 바뀐 뒤 회사측과 본격교섭에 나서는 첫 해로, 향후 산별교섭 판도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자칫 소모전으로 치달을 경우 국가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간판 제조업체 현대차(005380)와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간의 산별교섭이 최대 격전지로 손꼽힘에 따라 관심이 집중되는 양상이다.
▲ 국내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와 금속노조간 산별교섭에서 양측은 팽팽한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 현대차, 산별교섭 파고 잘 넘을까
 
윤여철 현대차 사장은 지난 28일 담화문을 통해 "지금은 다가올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성장과 고용안정은 노사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조합원들에게 호소했다.
 
현대차가 처한 절박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윤 사장은 또 "교섭에 참여하더라도 우리 직원의 근로조건과 무관할 뿐 아니라 회사의 처분권한 밖에 있는 중앙요구안에 대해선 결코 논의할 수 없다"며 "우리 직원들의 임금에 대한 논의에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중앙교섭 요구안과 해고자 복직 문제를 제외하겠다는 회사측의 입장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이렇듯 금속노조가 현대차와의 산별교섭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금속노조 교섭의 `키`를 현대차가 쥐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현대차의 조합원 수는 4만5000여명으로 금속노조 전체 조합원 수의 3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 범위를 현대차그룹으로 확대하면 50%, 협력업체 조합원까지 포함할 경우 70%를 웃돈다.

◇ 정치파업 늘면서 부정적 분위기 확산
 
▲ 산별노조 비율 추이(자료 : 노동부)

완성차업체들은 산별교섭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나 노조원의 근로조건 개선과는 상관없이, 개별 기업에서 해결이 불가능한 정치적 사안을 갖고 대정부 투쟁에 지부 조합원들이 동원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지난해 6월 금속노조가 주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투쟁은 근로조건이나 복지와 무관한 정치투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올들어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라크 파병 철수`, `국민연금법 개정 반대` 등 개별 회사가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인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산별노조 전환뒤 전국 단위의 정치파업이 늘 것이라고 예상했던 회사측의 주장이 결국 현실화되자 일반인은 물론 조합원들조차 산별노조의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현대차의 한 조합원은 최근 노조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임금협상의 장이 마치 국회에서 여야격돌의 장인 된 것 같다"며 "산별교섭 의제에 한미FTA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등이 포함된 것을 이해할 수 없고 현대차노조가 금속노조에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성준 선임연구위원은 "(산별교섭은) 임금 문제 등 근로자의 권익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등이 단위사업장에 개입하면서 정치 이슈화하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며 "노조의 극단적 선택은 결국 대내외 여건이 안좋은 상황에서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현 하나대투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현대차 산별교섭에서 주간 2교대 등 내부쟁점은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정치이슈가 파업의 명분이 될 가능성이 높고 파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 산별교섭, 2·3중 교섭..1년 내내 협상만 벌일 판

허문 자동차공업협회 상근부회장은 “현재도 매년 3개월 이상을 임단협 교섭으로 낭비하고 있는 마당에 금속노조의 요구대로 교섭을 진행한다면 1년 내내 교섭만 해야 할 것"이라며 "이로인한 인적, 물적 손실은 실로 엄청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별교섭은 규모와 경영여건의 편차가 큰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합의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다 기업별 교섭과 동일하게 진행되는 보충교섭을 또 진행해야 한다.
 
박 연구위원은 "만약 현대차가 금속노조와 산별교섭을 통해 (상향 평준화된) 노조안을 수용하면 이는 산별 소속 중소기업까지 영향을 끼친다"며 "이는 결국 중소기업 경영에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현대차지부 단체협상 요구안



◇ 별도요구안에 물량 전환배치까지..현대차, `산 넘어 산`

현대차는 올해 임금협상만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임금요구안 이외에 단체교섭 별도요구안을 별도로 내놨다. ▲ 주간연속 2교대 시행에 맞춰 생산직 월급제 전환 ▲ 생산설비 확장  ▲ 해고자 복직 등이다. 이에 따라 올해 노사간 합의 도출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물량 전환배치` 문제도 현대차의 발목을 잡는 한 요소다.
 
지난 3월 현대차 울산1공장에서 소형차인 클릭과 베르나를 생산하는 노조원들이 공장 가동을 한시간씩 중단시킨 일이 있었다. 소형차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쌓여 잔업과 휴일 특근이 없어지자 `일감을 더 달라`며 파업을 벌인 것이다.
 
또 회사측이 충남 아산공장의 쏘나타 물량 일부를 일감이 부족한 울산1공장으로 옮기기 위해 1공장 내에 생산시설까지 설치했지만 아산공장 노조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된 일도 있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악화되는 경제여건과 수입차의 국내시장 공략강화 등이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글로벌 도약에 난관으로 작용하는 마당에 산별교섭까지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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