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없는 사회’ 시행 한달…"그게 뭐에요" 되묻는 매장 태반

  • 등록 2017-06-04 오후 4:46:24

    수정 2017-06-04 오후 4:46:24

[이데일리 전상희 기자] “동전 적립이요? 방법을 모르는데……. ”

A씨는 서울 중구의 한 세븐일레븐 매장에서 현금으로 물품을 결제한 뒤 거스름돈을 포인트 앱에 적립해달라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지난달부터 편의점에서 이같은 동전 적립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막상 편의점 직원은 방법을 모른다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거스름돈을 동전으로 건네받았다. 동전으로 두툼해진 지갑이 영 거슬렸다.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반향은 크지 않다. 유통업체 중에 점원이 아예 동전 적립 자체를 모르는 곳이 태반이다. 복잡한 이용 방법과 당국의 홍보 및 업체 교육 부족 등으로 이용이 저조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업계나 소비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만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매장당 동전 적립건수 하루 1.5건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난달 20일부터 한 달간 일평균 이용건수는 3만5000여건이다. CU, 세븐일레븐, 위드미, 이마트, 롯데마트 등 시범사업 실시 매장이 전국 2만3050개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매장당 동전 적립건수는 하루 1.5건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적립수단이나 업체별 홍보 등에 따라 이용 편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범사업자로 참여한 한 업체의 경우 한 달 이용건수는 140건에 그쳤다.

‘동전없는 사회’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현금으로 결제하고 거스름돈은 선불카드나 카드포인트 적립, 교통카드에 충전하는 식으로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한국은행이 동전 사용을 최소화해 동전 유통 및 관리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에 나섰다.

그동안 동전 사용률이 떨어지고 집에 보관하는 동전이 많아지면서 동전 제조 비용이 상당했던 게 사실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008년부터 작년까지 동전교환 운동을 통해 회수한 25억개의 동전을 만일 새로 제조할 경우 연평균 284억원이 든다고 밝힌 바 있다. 동전 회수를 통해 주화 제조비용을 46%가량 절감한 것이다. 동전없는 사회를 만들면 비용을 더 아낄 수 있고 동전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어 소비자들의 편의도 높아진다.

적립수단 제각각…홍보·교육도 미미

하지만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유통업체별로 사용할 수 있는 적립수단이 각기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CU에서는 T-머니나 캐시비, 신한FAN, 하나머니 등을 이용해 적립가능하며 세븐일레븐에선 캐시비나 네이버페이포인트를 이용해야 한다. 위드미와 이마트에서는 SSG머니 롯데마트에서는 L.Point만 사용 가능하다. 각각의 적립수단이나 앱을 준비해야하는 번거로움은 물론 적립한 돈의 사용처가 한정되는 점도 이용을 꺼리게 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이미 결제시 신용카드 등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고객들이 많을 뿐더러 아직 SSG머니 이용자 자체가 많지 않아 고객들의 이용이 활발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한은 측은 향후 은행 통합 계좌 적립 방법으로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라 밝혔지만, 은행권 통합 플랫폼 시스템 구축이나 플랫폼 수수료 문제 등이 남아있어 이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보나 교육 부족으로 업체 현장관계자들이 제도 자체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한은 측은 소비자 인식부족의 원인을 업체쪽에서 찾았다. 시범사업자 자체적으로 직원 교육이나 매장 내 홍보 등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현장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업체에서 현장영업자들의 활용이 익숙해지면 소비자들에게 홍보를 확대해 가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업체 측에선 사용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 영업직원들이 해당 제도를 충분히 익히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해명했다. 한은과 업계의 소극적 홍보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자의 인식이 높아지기보다 사업 동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동전없는 사회’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현금 이외의 결제 수단에 익숙하지 않은 아동·고령자의 문제나 저소득층은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 측은 “티머니 등 고령자나 어린이들이 모두 사용하는 결제수단을 활용하면 된다”며 “동전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계획이 아니라 사용량을 줄여 사회적 낭비를 막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등 현금 거래 한도 법령으로 정해

일부 선진국가들을 ‘동전 없는 사회’를 넘어 ‘현금 없는 사회’를 이끌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시도 중이다. 화폐 발행 및 관리비용을 줄이고, 현금의 익명성에 따른 자금세탁과 탈세, 불법거래 등을 막기 위한 취지다.

지난 4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주요국의 지급수단 이용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등 유럽의 주요국에서는 현금 거래 가능한도를 법령으로 정해 한도를 초과하는 현금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홍콩, 싱가포르 등은 정부 주도의 협의체와 비현금 결제기술 연구기관을 설립해 현금없는 사회의 실행 방안을 연구 중이다.

해외의 활발한 연구 움직임 속에서도 모든 거래가 전자화돼 기록되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오·남용될 수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아울러 현금이나 동전을 대체할 전자 지급 시스템의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도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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