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푸틴 탐욕에 칼국수 8천원…가격표 다시 쓰는 식당

[우크라發 물가쇼크]①
국제 곡물값 상승, 냉면·칼국수·자장면값 사상 최고
기름 아까워 출항 안 하는 고깃배…어획량↓ 횟값↑
"냉면, 1년 새 1000원씩 올라…월급 빼고 다 올랐다"
점주들 "안 오른 식자재 없어…매출 빼고 다 올랐다"
  • 등록 2022-04-17 오후 5:48:43

    수정 2022-04-17 오후 9:00:07

지난 14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50일이 됐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전쟁이 국제 물가 상승을 부추기며 우리나라 먹거리 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특히 국제 곡물가격과 유가 ‘쌍끌이’ 상승으로, 국내 식자재·운송비도 덩달아 뛰며 외식 물가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이 풀리면서 외식 경기 회복을 기대한 사장님도, 이제 밖에서 식사 모임을 즐기나 했던 소비자도 모두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날 더워지는데 냉면 한 그릇 먹기도 겁나네요. 월급 빼고 다 올랐어요.”

‘냉면 마니아’를 자처하는 박형재(44)씨는 최근 서울 중구 유명 A냉면집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작년까지 1만6000원이었던 회냉면 가격이 1만7000원으로 뛴 것이다. 박씨는 “봄부터 냉면 먹는 게 사는 낙인데 살 떨려서 먹을 수가 있나”라며 “회냉면은 비싸서 이젠 물냉면이나 먹어야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A냉면집 사장 이모씨는 박씨에게 “우리도 매출 빼고 다 올랐다”며 “식자재비, 운송비, 인건비 등 다 올랐는데 가격을 안 올릴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17일 외식업계에 따르면 서울 유명 냉면집 상당수가 연초부터 1000원씩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에 오른 ‘필동면옥’은 기존 1만2000원에서 1만3000원으로 가격을 올렸고, ‘봉피양’은 1만5000원으로, 을지면옥은 1만3000원으로 각각 1000원씩 인상했다.

대표적 ‘서민 음식’ 칼국수도 마찬가지다. 15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칼국수집 가격표에는 ‘8000원’의 맨 앞자리 숫자 ‘8’이 다소 어색한 글씨체로 덧씌워져 있었다. 사장 B모씨는 “지금대로면 도저히 유지가 안 돼 어제부터 7000원에서 8000원으로 올렸는데 가격표를 바꾸면 또 돈이 들어가 앞자리만 고쳤다”면서 “간장, 기름, 소주, 하다못해 휴지(냅킨)까지 안 오른 게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실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내 외식업계는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바로 영향을 받았다. 17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3월 서울지역 냉면 평균 가격은 9962원으로 전년 대비 9.7% 상승했다. 1만원대 돌파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서울지역 칼국수 평균 가격은 8.8% 오른 8115원을 기록했다. 서울의 칼국수 가격이 8000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밖에 △자장면(9.4%) △비빔밥(7.0%) △김치찌개백반(5.7%) △김밥(5.2%) 등도 높은 연간 상승률을 나타냈다.

서울 지역의 칼국수 평균 가격이 8000원 선을 처음으로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서울시내 칼국수 식당 모습(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는 러시아·우크라이나와 멀어 물류비 부담이 크고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두 나라가 아닌 북미·호주에서 주로 밀을 들여오지만 세계 밀 수출 시장 점유율 29%를 차지하는 두 나라의 수출이 마비 상태라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는 셈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초 t당 279달러 수준이던 국제 밀 가격은 17일 기준 4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제분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 밀 수출 물량 29%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수출항에 묶여 있다”며 “약 30%의 물량이 오랫동안 못 나오고 있으니 나머지 국가가 조달하는 70%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횟집은 유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다. 횟감의 육로 운송비가 올랐고, 기름값이 아까워 조업을 나가는 배가 줄어들면서 수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횟집을 하는 김모씨는 “어제 노량진 수산시장에 나가 보니 청어가 평소 5분의 1 수준인 달랑 10박스만 나왔더라”라며 “요새 고기잡이 배가 한 번 출항하는데 기름값이 1000만원정도 든다는데 이게 부담스러우니 50척 나갈 게 10척만 나간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출항해 봤자 기름값도 건지기 힘들기 때문에 조업을 나가지 않는 배가 늘고, 어획량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횟감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이 3월 15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수입 수산물 유통 점검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실제 17일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3월 어업인에게 공급되는 고유황 경유 가격은 200ℓ(1드럼)당 17만8930원을 기록했다. 전년(10만6210원)보다 68.5% 급등한 가격이다. 유류비는 전체 출어 경비에서 40% 안팎으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통상 14t 어선에 15드럼을 싣고 나가 10일 동안 작업한다. 한 달 동안 조업한다면 작년 3월 477만9450원이었던 유류비가 올해는 805만1850원으로 2배 가까이 뛴 셈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작년부터 밥상물가 상승이 시작됐는데 이제 외식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라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식자재뿐만 아니라 운송비 등 모든 분야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공급망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국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태라 정부도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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