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보리 기자] ‘지난해 이후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첫 그랜드슬램’. 최근 우리나라가 대외신인도에서 거둔 성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지난 2010년 무디스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이 홍콩의 신용등급을 동시에 상향한 이후 깨지지 않았던 기록을 우리나라가 경신한 것이다. 특히 미국·일본·독일 등 세계 주요국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되고 있는 상황에서 등급상향 3관왕을 달성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한국경제에 대한 대외 신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피치사 기준으로는 한국의 신용도가 일본을 추월하는 쾌거를 일궈내기도 했다.
3관왕의 첫 테이프를 끊은 곳은 무디스였다. 무디스는 지난달 27일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상향했다. 이어 지난 6일 피치가 신용등급을 ‘A1’에서 무디스와 같은 ‘Aa3’로 올렸다. 이들은 모두 신용등급 상향 전에 신용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해, 등급 상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상향은 ‘서프라이즈’에 가까웠다. S&P는 지난 2005년 7월 이후 등급은 물론 등급전망도 바꾸지 않았다. 게다가 S&P는 국제 신평사 중 가장 깐깐한 평가기관으로 정평이 나 있어 우리 정부가 더욱 욕심을 낸 기관이기도 하다. S&P 상향 조정으로 가장 엄격한 시험 감독관에게마저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인정받은 셈이다.
우리나라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은 지난 1999년, 2002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올해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1999년과 2002년 상향은 97년 IMF 위기 이후 일시적으로 강등된 등급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IMF 위기로 순식간에 투자적격단계에서 투기 등급으로 바뀌며 많게는 10단계까지 신용등급이 떨어졌기에, 일부를 회복하는 것은 지금보다 어렵지 않았다. 올해는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한 세계경기침체가 진행되는 와중에, 그것도 투자 상향 등급인 A 레벨 속에서 단행된 상향이란 점이 이전과 다르다. S&P가 아직 외환위기 수준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을 매기고 있긴 하지만 전반적볼 때 사실상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그랜드슬램’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신용등급 상향이 요건이 더욱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S&P기준으로 2007년 이후 A 레벨 이상을 받은 국가 수는 2007년 말 47개에서 2008년 45개, 2009년 43개로 줄었다. 지난해 말에는 26개, 그리고 올 9월 기준으로는 23개까지 감소했다. 2007년과 비교하면 5년 사이에 A등급을 받은 국가들이 반 토막 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더욱 까다로와진 시험을 통과하면서 3관왕에 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