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강종구기자] 지난해 신용카드를 이용한 대출이나 외상구입이 크게 감소하면서 가계 신용 증가세가 급격하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계의 부채규모와 1가구당 빚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2003년중 가계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말 가계신용 잔액은 447조5675억원, 가구당 2926만원으로 사상 최대를 나타냈다. 가계신용 전체 잔액은 전년에 비해 8조5000억원(1.9%) 늘었고 가구당 잔액은 11만원 증가했다.
◇가계신용 증가세 급제동
지난 1999년부터 매년 가속도를 더해가던 가계신용 증가세는 지난해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 2002년 하반기 이후 취해진 일련의 가계신용 억제책과 함께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부진이 빚어낸 결과로 풀이된다.
카드사로 인한 신용위기 촉발 이후 감독당국이 자산건전성 감독을 강화하고 카드사들도 현금서비스 한도를 축소하고 이용수수료를 높이면서 가계대출이 크게 둔화됐다.
현금서비스및 카드론 등 카드사를 포함한 여신전문기관 대출은 전년 13조원 증가에서 19조7822억원 감소로 급반전했다. 예금은행들도 가계대출 억제조치 등을 배경으로 증가폭이 전년 65조원에서 31조7404억원에 그쳐 전년 65조원 증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420조9383억원으로 연중 29조8189억원(7.6%) 증가에 그쳤다. 전년 87조원, 28.9% 증가한 것에 비하면 크게 둔화된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상호금융 등 신용협동기구의 대출은 5조7000억원에서 13조2024억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이들이 저금리기조에 자금을 운용할 곳이 없자 가계대출 확대에 나섰고 은행 대출이 까다로워진 개인들도 신용협동기구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극심한 소비부진의 여파로 가계의 외상구매도 지난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신용카드를 이용한 판매신용이 연중 내내 감소하면서 총 15조8110억원 감소했고 할부금융회사의 판매신용도 3조7000억원이 줄었다. 또 백화점, 자동차사 등 판매회사의 외상판매도 1조7957억원이 축소됐다.
이로써 지난해 전체 판매신용은 21조3113억원 급감해 99년부터 이어오던 4년연속 증가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중 70% 가량이 카드를 이용한 구매활동이 줄어든 탓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조성종 국장은 "그동안 가속되던 가계신용 증가세가 꺾여 진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2분기에 줄었던 가계신용이 3분기 이후 다소 증가했지만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년에도 가계신용은 안정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다만 경기회복으로 카드이용이 크게 늘거나 카드에 대한 규제가 완화될 경우 다시 급증할 우려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금리상승 등 충격에 취약..추가부실 방지 나서야
지난해 9월말 현재를 순수가계부채가 명목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1.3%지만 순수가계부채와 소규모 개인기업 및 민간비영리단체도 포함한 개인부문 금융부채의 비중은 83.4%로 미국 86%, 일본 81.6%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가계의 부채수준은 올해 소폭 늘어날 수도 있고 상환이 늘면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어 아직 단정짓기는 어렵다. 다만 올해 경제가 성장해 소득이 늘어날 경우 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은은 가계의 채무부담이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져 있어 금리상승이나 소득감소의 충격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가계신용의 건실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기관은 신용위험 관리기법을 고도화해 가계대출의 추가부실 방지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지난해말 현재 은행가계대출 연체률은 9월말 2.27%보다는 하락했지만 전년말 1.50%보다는 상승한 1.78%를 기록하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율은 14.3%로 매분기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신용용불량자 수는 372만명으로 늘었다.
한편 한은이 지난해 4분기중 은행 가계대출을 조사한 결과 신규대출의 절반에 가까운 49.6%가 주택용도였고 소비를 위한 대출은 22.4%였다. 나머지는 사업관련이거나 재테크 등 기타용도의 대출.
대출 만기는 2년이상~5년미만이 48.4%로 절대적으로 많았고 1년미만 대출도 24.7%에 달했다. 또 지난해말 잔액을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이 49.3%, 신용및 보증대출이 39.0%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