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인(캘리포니아)=edaily 이의철특파원] 뉴욕 맨하튼 8가 42번 거리는 맨하튼 시내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속에서 "이지웨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미국 최대 규모의 인터넷 카페다. 한국인이 여기에 들어서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우선 규모가 놀랍다. 2개층으로 만들어진 카페에 수백대의 모니터가 촘촘이 설치돼 있고 각양 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시간당 1달러에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다. 또 하나는 수백대의 모니터마다 모두 "samsung"이라는 로고가 선명히 찍혀있다는 점. 바로 삼성전자의 모니터다.
이지웨이는 영국에 본사를 둔 인터넷 카페 체인점이다. 소유주는 그리스 선박부호의 2세. 이지웨이에 삼성전자 모니터가 깔린 과정을 보면 삼성전자 마케팅의 핵심 경쟁력을 알 수 있다.
이지웨이가 글로벌 체인점을 준비중이라는 사실을 보고한 것은 삼성전자 영국 법인. 삼성전자 뉴저지의 북미총괄과 어바인의 모니터 판매법인은 이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치밀한 납품작전을 수립했다. 이지웨이가 요구하는 제품의 구체적인 사양을 파악하는 것은 영국법인의 몫이었고 어바인 법인은 납기와 제품 사양을 이지웨이의 니즈에 맞게 조정했다. 이를 총 지휘한 것이 북미총괄이었다. 빠른 피드백과 신속한 의사결정에 힘입어 결국 삼성전자가 최종 납품사로 결정됐다.
납품 조건 중엔 처음 모니터를 켤 때 삼성이라는 로고가 화면에 뜬다는 내용도 있었다. 어바인 법인의 박찬호 차장은 "초기엔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마케팅에 중점을 뒀다"고 귀띔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내 이지웨이 체인점에만 2000여대가 넘는 모니터를 납품했다. 모든 모니터엔 "samsung"라는 선명한 로고가 찍혀 있음은 물론이다.
삼성전자 어바인 법인은 최근 포브스, 뱅크원, 홈디포,블룸버그 등이 등장하는 광고를 제작했다. 삼성전자 광고에 등장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모두 삼성전자 모니터를 구매하는 고객이라는 것. 블룸버그통신이 등장하는 잡지 광고의 문구는 이런 식이다."블룸버그는 삼성모니터를 통해 미래를 본다".
홈디포나 블룸버그 등은 미국 비즈니스계의 메이저 플레이어들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삼성전자와 공동마케팅(co-marketing)에 흔쾌히 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따로 광고료를 지불한 것도 아니다. 박찬호 차장은 "공동 마케팅이 성사된 것은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가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삼성이 더이상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로 부상했음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말한다.
현재 미국의 각 기업과 관공서마다 삼성전자의 모니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정부기관에도 백악관을 비롯해 연방수사국, 식품의약국, 국방성, 중앙정보국(CIA) 등에 납품되고 있다. 삼성 모니터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15% 수준으로 뷰소닉에 이어 2위다.
품질 면에서도 삼성전자는 단연 선두권이다. 기자가 어바인 법인을 방문했을 때 마침 김태학법인장(상무)은 부재중이었다. 컴퓨터 전문잡지 바 비즈니스가 매년 뽑는 최우수 모니터에 선정돼 상을 받으러 갔기 때문이다. 어바인 법인은 회의실 하나에 그간 받았던 상과 트로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데 "트로피들이 넘쳐나 다른 공간을 마련해야 할 정도"라고 박찬호 차장은 설명했다.
바 비즈니스는 매년 모니터 벤더들을 대상으로 제품만족도를 조사한다. 올해 삼성전자는 총점 85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74점으로 공동 2위를 기록한 뷰소닉과 NEC를 큰 점수차로 따돌렸다. 특히 제품의 안정성과 신뢰성은 93점으로 경쟁업체들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지난해 종합 4위를 기록했던 삼성은 올해 제품의 혁신성을 비롯해 파트너십, 벤더에 대한 지원,충성도 등 모든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전자가 메이저 플레이어가 되고있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델의 TV 납품요구를 거절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과거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두가지 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델에 납품하는 물량 자체가 시장점유율이라는 측면에서 무시하기 힘들다는 점. 또 하나는 델은 이미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납품 요청을 거절했다.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유통채널이 중복돼 고객에게 혼돈을 줄 수 있다, 삼성의 미래전략에 부합하지 않는다 등등.
그러나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자신감"이다. 델과 같은 메이저에 종속되지 않더라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 델의 요구를 놓고 북미 총괄 내부적으로도 찬반양론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북미총괄은 "거절" 의견을 본사에 보냈고 본사는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시장에서 더이상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 메이커가 아니라는 것을 선언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