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소현 이상원 기자]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안전수칙을 공공연히 위반하며 사고위험에 노출된 철거현장이 부지기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며 당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13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49-29외 4개의 건물 철거 현장. 6층 규모의 건물이 중간 부분부터 철거가 시작되면서 양쪽 기둥에 의지한 채 서 있는 모습이다.(사진= 이상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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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현장 곳곳 위태…안전불감증 여전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사건 발생 닷새째인 13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49-29외 4개 건물의 철거현장은 아슬아슬했다. 도로와 인도와 맞닿은 건물 옆면은 육안으로 6층 규모 높이까지 벽체가 온전히 남아 있지만 앞·뒷면은 형태가 대부분 사라져 콘크리트 골조를 훤히 드러내 놓고 있었다. 철제 안전펜스의 높이도 제각각이었다. 도로변을 마주하고 있는 면과 달리 행인들이 지나는 골목 안쪽은 2m가 채 되지 않은채, 가림막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이송규 안전전문가(한국안전전문가협회 준비위원장)는 “양쪽 기둥을 놔두고 중간부터 털어내는 것은 정상적인 철거방식이 아니다”라며 “건물은 양쪽에 기둥이 있고 사각형 네 모서리에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주는 ‘보’로 연결돼야 하는데 보는 없고 기둥만 남아 있는 상태로 무너질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49-29외 4개의 건물 철거 현장으로 6층 규모의 건물이 중간 부분부터 철거가 시작되면서 양쪽 기둥에 의지한 채 서 있는 모습이다.(사진= 이상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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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고 소식을 접한 인근 상인들은 혹시라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철거현장 맞은편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20대 이모씨는 “지난달 말 본격적인 철거 작업이 시작됐는데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위험한 것 같은데’라고 하는 걸 들었다”며 “건물 안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고 철판도 낮게 둘러놓았는데 현장 바로 앞에 있어 무섭다”고 말했다. 철거현장 옆에서 17년 동안 밥집을 운영해온 60대 염모씨도 “공사 시작 때는 (건물) 가운데 ‘펑’하고 구멍을 뚫더니 위부터 크레인으로 부시면서 빠르게 내려온 것 같았다”며 “광주 건물사고 이후로는 대규모 공사가 아니라 집게 같은 것으로 야금야금 떼어내는 작업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강북구의 한 도로 옆 건물 철거현장도 마찬가지였다. 반쯤 부서진 4층 높이의 건물은 콘크리트 골조를 훤히 드러내 놓고 있었다. 건물 옆에는 폐자재 등을 이용한 토산을 쌓고, 굴착기를 올려 옆면을 뜯어내듯이 철거를 진행하는 모습이었다.
재건축이 한창인 마포구 염리동 건설현장도 단층 규모로 철거는 끝났지만, ‘안전제일’ 표시 외에 안전 보호막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쉐라톤 팔레스호텔 철거 현장에서 구조물이 붕괴돼 인근 아파트 주차장으로 쓰러졌다.(사진=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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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고 철거 업체와 같아”…공사 중단 요청
지난 11일 구조물이 인근 아파트 주차장 쪽으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한 서초구 반포동의 쉐라톤 팔레스호텔 철거현장은 보수가 마무리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인근 아파트 주민이 여전히 불안감을 호소해 공사는 현재 중단된 상태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주민은 오는 15일 서초구청을 방문해 안전이 담보될 때까지 공사 중지를 요청하고, 법원에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다.
30대 주모씨는 “차로 출입하는 곳이 바로 호텔 옆 왼쪽이라 차를 이용해 출입구로 나갈 때마다 호텔이 쓰러질 것 같은 무서움이 크다”고 말했다. 50대 임모씨는 “(철거 현장) 옆으로 다닐 때마다 두려울 정도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 아파트 입주민 사이에선 팔레스호텔 철거 담당이 광주 건물 철거를 맡은 업체(다원이앤씨)와 동일업체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한 주민은 “아파트 입주민 단톡방에서 광주 사고 철거업체와 같은 곳이라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쉐라톤 팔레스호텔 건축물 해체공사 관련 안내문 및 주민설명회 자료로 철거 시공사는 광주 건물 붕괴 사고와 동일한 ‘다원이앤씨’(다원E&C)가 맡고 있다.(사진=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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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철거현장의 안전문제는 건설현장의 저비용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설유경 서일대 건축공학 교수는 “안전불감증을 만들어 내는 근원적 원인은 공학적인 측면이 아닌 결국 금전적인 문제로 경제적인 부분에서 비용을 절감하려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