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는 집주인 맘대로..두번 우는 다가구주택 세입자

아파트와 달리 다가구주택 관리비 부과기준 없어
내역 공개도 의무 없어 '법 사각지대'
분쟁 일어나도 조정해 줄 곳 없어
임대차 계약 때 관리비 미리 합의 후
특약사항에 기재, 분쟁 소지 막아야
  • 등록 2018-04-15 오후 4:47:38

    수정 2018-04-15 오후 7:33:22

다가구주택 세입자와 집주인간 관리비나 수도요금 배분을 둘러싼 분쟁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일대 다가구주택 밀집지역 전경. [사진=서울시]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1. 아파트에 살다가 육아 문제로 처가 근처 다가구주택 전세를 얻어 이사한 성모(37)씨는 얼마 전 수도료 배분을 놓고 집주인과 마찰을 빚었다. 격월로 나오는 수도요금 고지서는 가구당이 아니라 건물 합산으로 요금이 표기돼 있어 주인이 임의로 각 가구에 배분하는데, 이사 후 2주간 사용한 수도요금으로 1만8000원을 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아파트에 살 때에는 한 달에 수도료가 많아야 6000원을 넘지 않았던 터라 살고 있는 다가구주택 전체 수도요금과 배분 기준을 따져 물었더니 “세 사는 것들이 말이 많다”라는 말과 함께 내라는 대로 내라는 답만 들어야 했다.

2. 집주인이 맨 윗층에 살고 그 아래층에 전세 사는 다가구주택 세입자 박모(43)씨. 보름 전 4가구가 사는 주택의 공용전기료와 청소비로 한 달에 4만원의 관리비를 내라는 집주인의 통보를 받았다. 박씨는 공용전기료는 한 달에 몇천원 수준이고, 청소는 전문 청소업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가끔 주인이 계단에 떨어져 있는 휴지를 줍는 정도인 만큼 관리비를 낮춰달라고 부탁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집주인은 “살기 싫으면 당장 나가라”고 윽박지르는가 하면 “나중에 전세보증금 제대로 다 못 받을 줄 알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박씨는 전세보증금이 아파트보다 싼데다 관리비 부담도 크지 않아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했는데 후회막심하다고 털어놨다.

비싼 아파트 전세금을 피해 전셋값이 보다 저렴한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지만 관리비나 수도요금 배분을 둘러싸고 집주인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다가구주택 세입자가 구청에 제기하는 문의하는 민원의 절반 가량이 관리비와 관련된 것”라며 “특히 원룸 관리비가 정당한 부과인지, 적정 수준인지, 해결책은 없는지 묻는 민원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분쟁조정위원회, 다가구주택 세입자에겐 무용지물

문제는 다가구주택의 관리비나 수도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집주인 마음이어서 규제할 수단도 마땅히 없고, 분쟁이 발생해도 조정할 주체도 없다는 점이다. 주택법상 공동주택 관리자는 정해진 항목에만 관리비를 받고 사용 내역을 공개해야 하지만,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150가구 미만 집합건물은 대상이 아니다. 내역을 공개하거나 신고할 필요가 없어 감독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집주인들은 임대소득 관련 세금을 줄이기 위해 월세 대신 관리비를 올리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주택 두 채 이상으로 연간 2000만원 이상의 임대소득을 올리거나 세 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관리비는 임대소득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월세를 낮추는 대신 관리비를 높여 소득은 보존하고 세금은 적게 내는 식이다. 물론 다가구주택은 집주인이 한 명이고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형태여서 등기상 1주택이지만, 짭짤한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어 다주택자들의 수익형 부동산 투자 대상으로 꼽힌다. 때문에 집주인이 다주택자인 경우도 적지 않다.

억울해도 다가구주택 세입자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다. 지난 2012년 집합건물법이 개정되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집합건물과 관련한 분쟁조정위원회를 운용하고 있지만 아파트만 해당돼 다가구주택 세입자에겐 무용지물이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개인간 계약’…분쟁 해결할 근거 없어

수도요금의 경우 서울상수도사업본부에 요청해 수도계량기를 따로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100만원 가량의 비용이 발생한다. 주인이나 세입자가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부담하기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다가구주택의 경우 관리비 분쟁과 관련해 문의가 들어오면 각 구청으로 이관한다”며 “비용 책정 등에 대한 특별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중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공동주택과 달리 다가구주택 관리비는 주택법에 규정된 사항 아니고 민사 영역”이라며 “행정관청 입장에서는 다가구주택 관리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라고 안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다가구주택의 관리비는 개인간 계약이기 때문에 집주인과 합의하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관리비 분쟁으로 추후 전세보증금 반환에 문제가 생길 경우 소액재판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은 있다”고 귀띔했다.

공인중개사들은 분쟁의 소지를 없애려면 다가구주택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때 미리 관리비나 수도요금 배분 원칙에 대해 합의하고 특약사항에 넣는 방법을 권한다. 다가구주택이 밀집해 있는 광진구 구의동 한 공인중개사는 “다가구주택의 경우 통상 2만원 정도를 적정 관리비로 보는데 집주인에 따라 5만원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다세대나 아파트에 살다 다가구주택에 처음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관리비까지 생각하지 못하는데 미리 협의하고 특약에 넣는 게 차후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엿장수 마음인 다가구주택 관리비 폐해가 논란이 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법안도 발의됐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임대인이 월세 외에 청소비·수리비·관리비 등 다른 명목으로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 임대차 계약시 그 용도와 금액을 명시해야 한다는 조항을 새로 넣은 것이다. 김 의원은 “개정법을 통해 그간 내역을 알지 못했던 관리비 등이 보다 투명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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