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와 해적 협공에 벼랑 끝 몰린 한국영화

할리우드 영화 2편에 국내 스크린의 3분의2 내줘
  • 등록 2007-05-22 오전 11:28:02

    수정 2007-05-22 오전 11:28:02

▲ 할리우드 한국 대공세의 두번째 주자 '캐리비언의 해적3-세상의 끝에서'

[이데일리 윤경철기자]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할리우드 영화 대공세를 바라보는 충무로 사람들의 참담한 심정을 담은 말이다.

쉴틈을 주지 않는 블록버스터의 공세에 국내 영화들이 좀처럼 예전의 기세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스파이더맨3’에 이어 ‘캐리비언 해적3’까지 가세해 거세게 밀고 오고 있다.

한 때 최고 800여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던 ‘스파이더맨3’는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500여개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여기에 23일 개봉 예정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캐리비언의 해적3’ 은 이미 670개의 영화관을 확보했다.

‘캐리비안 해적3’의 개봉과 맞물려 '스파이더맨3'의 상영관이 다소 조정을 받겠지만 극장가에선 최소 11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두 작품이 상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현재 국내 전체 스크린 수 1705개(영진위 발표)의 약 65%에 해당되는 수치이다.

두 편의 해외 영화에 국내 스크린의 3분의2를 내준 이같은 상황은 충무로 전체에 적잖은 충격을 줄 전망이다.

‘스파이더맨3’에 맞서 최근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못말리는 결혼’의 제작사 컬처캡미디어의 최순식 대표는 “사실상 목좋은 자리는 모두 외국인들에게 내준 꼴”이라며 “극장사업이 갖는 상업성은 이해하지만 어느 정도의 다양성은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 대표는 “할리우드 영화의 우월적 지위 때문에 선의의 한국 영화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는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의 볼권리를 강제로 빼앗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화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오기까지 한국 영화계는 무얼 했느냐고" 안이함을 자책하는 의견도 쏟아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인은 “한국 영화는 최근 해외 영화를 압도했던 장점 중 하나였던 장르적 다양성이 사라졌다”면서 “‘부정’(父情)을 소재로 한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되는 점이나 비슷한 류의 코미디의 범람은 관객들에게 실망을 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용카드 및 이동통신사 할인이 없어지는 등 영화 관람 비용이 증가하면서 관객들은 이제 꼭 보고싶은 영화만 골라본다”면서 “한국영화계도 애국심에만 호소하기 보다는 체질 개선등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충고했다.

영화관계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앞으로도ㅜ 할리우드 영화의 독주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슈렉3’ ‘오션스13’ ‘다이하드4’ 등 이미 한국 시장에서 흥행을 검증받은 작품들의 개봉이 줄을 잇고 있다.

반면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실망은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영화포탈사이트 맥스무비의 설문조사에선 국영화들이 잇따라 8점대 미만(10점 만점)의 낮은 평점을 받았다. 이 설문조사에서 관객들은 “최근 한국영화들은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다가 실망한 경우가 많다”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라고 기대치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실망은 하지 않는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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