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국정원, 방통위 간부 이념 파악..승진 반영 파문

문체부 공무원은 블랙리스트, 방통위 공무원은 화이트리스트
방통위 간부들, 공영방송 파업 개입 정황 파문
정권마다 바뀌는 국가관 논란도
  • 등록 2017-10-11 오전 9:12:59

    수정 2017-10-11 오전 9:12:59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박근혜 정부시절 국가정보원이 승진심사 대상에 오른 방송통신위원회 간부들의 이념성향을 조사하고, 공영방송 파업과 정부 비판 보도에 개입한 간부들을 긍정 평가하는 방식으로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이 2013년 6월부터 최근까지 작성해 방통위 운영지원과로 회신한 20건의 ‘간부 승진 대상자 신원조회 결과 회보’에서 드러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참 나쁜 사람”으로 찍혀 퇴출당했던 문체부 간부들이 블랙리스트였다면 방통위 사무처 공무원들은 화이트리스트로 지원받은 셈이다.

문체부 공무원은 블랙리스트, 방통위 공무원은 화이트리스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서울 중랑을)은 11일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은 ‘간부 승진 대상자 신원조회 결과 회보(’13. 6 ~ 작성·발송한 20건)‘을 공개하며,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

국정원은 ▲3급 승진 대상자인 A씨에 대해선 ‘KBS·MBC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며 방송의 공영성을 위해서 유관부처와 긴밀하게 대응’ 했고 ▲역시 3급 승진자인 B씨에 대해선 ‘방송의 편파보도·오보 적극 개선 등 방송 공정성 강화에 기여’했다고 적었다.

또 ▲3급 승진자인 C씨에 대해선 ‘과거 통신비밀보호법 관련 업무 경험을 토대로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국가기관의 감청 업무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고위공무원 승진 역시 ▲나급 승진 D씨에게 ‘일부 방송 영화의 북한(간첩) 미화에 우려 표명 등 안보관이 투철하다’▲역시 고위공무원 승진 임용을 앞둔 E씨에 ‘국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종북좌파 세력의 용어선점전술을 경계해야 한다며 北주체사상의 허구성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적었다.

이런 항목은 모두 국정원이 작성한 해당 문서의 ‘국가관 및 직무자세’에 포함된 내용이다.

▲A씨에 대한 신원조사 회보서 내용 중 발췌(출처: 박홍근 의원실)
2015년 6월 5일 작성된 A씨의 신원조회 회보서를 살펴보면 ‘KBS·MBC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며 방송의 공영성을 위해서 유관부처와 긴밀하게 대응’했다고 평가했는데, 문건의 작성시기로 미뤄볼 때 국정원이 언급한 불법파업은 2012년 2월 KBS와 MBC의 동시 파업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신원조회 당사자인 A씨는 방송업무 총괄 서기관을 지내면서 종편 사업자 선정 TF와 미디어렙 법안 발의 등 이명박 정부의 주요 방송정책 업무를 담당했고, 국정원 평가 직후 서기관에서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2016년 3월 10일 작성된 문건에서 ‘방송의 편파보도·오보 적극 개선 등 방송 공정성 강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은 B씨는 2개월 뒤 자신이 팀장으로 있던 부서가 확대 개편되면서 과장에 올랐다.

2015년 5월 29일 작성된 문건에서 ‘과거 통신비밀보호법 관련 업무 경험을 토대로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국가기관의 감청 업무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고 기술된 3급 승진 대상자 C씨는 1년 뒤 대통령직속기구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이 외에도 ‘일부 방송 영화의 북한(간첩) 미화에 우려 표명 등 안보관이 투철’하다거나 ‘국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종북좌파 세력의 용어선점전술을 경계해야 한다며 北주체사상의 허구성을 강하게 비판’, ‘실패한 체제인 북한에 동조하는 종북세력은 발본색원해야 할 대상이라 지칭’, ‘종북사이트규제 업무 적극 수행’ 등 승진심사와 무관한 이념성향 평가가 다수 포함됐다.

방통위 간부들 공영방송 파업 개입 정황 파문..정권마다 바뀌는 국가관 논란도

방송사 규제 권한을 가진 방통위 간부들이 공영방송 파업과 보도에 개입했고, 국정원은 신원조사를 통해 이들의 승진심사를 지원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예상된다.

박 의원은 “국정원이 신원조회를 통해 공영방송 파업과 정부 비판적 보도에 개입한 간부들을 긍정 평가하며 지원했다”며, “국정원의 공직자 ‘사상검증’ 탓에 방송자유 수호에 앞장서야 할 방통위의 독립성이 심각히 훼손됐다.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방통위 일각에선 정권마다 바뀌는 국가관에 공무원은 어찌해야 하는가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방통위는 앞서 8월 25일 ‘새로운 국정철학에 따른 규제재설계 방향’이라는 주제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에서 활동했던, 국민대 경제학과 조원희 교수를 초빙해 직원 교육에 나서는 등 여야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직원들에게 정권의 뜻에 맞는 행정행위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방통위 한 직원은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한다는 차원과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는 보는 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며 “방송정책국은 같은 입으로 갑자기 전혀 다른 말을 할 수밖에 없어 직원을 교체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효성)는 8월 25일 ‘새로운 국정철학에 따른 규제재설계 방향’이라는 주제로 국민대 경제학과 조원희 교수를 초빙하여 규제재설계 교육을 실시했다. 방통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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