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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입니다. 12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참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 이야기합니다. 한국정치는 지난 1년간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특히 12월 9일 오늘은 꼭 1년 전에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이었습니다. 만약 지난해 12월 9일이 없었다면 올해 5월 9일 대선도 없었습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는 예정대로 올해 12월 20일에 치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9일이 있었기 때문에 19대 대선은 지난 5월 9일에 치러졌습니다.
올해 달력을 보면 12월 20일은 빨간 날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저 평범한 수요일입니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의 여파로 ‘대통령선거일’이라는 임시 공휴일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난해 12월 9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제19대 대선은 지난 5월 9일 아니라 12월 20일에 치러질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촛불의 힘이었습니다.
레임덕이라도 대통령은 대통령…‘막강권력’ 박근혜 스스로 무너지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막강합니다. 헌법은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을 이야기하지만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역시 최고입니다. 임기 초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임기 5년 막바지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릴 지라도 대통령은 역시 대통령입니다. 새로운 권력 창출을 주도하지는 못해도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는 대통령이 될 수 없도록 할 힘은 여전히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미래권력은 현재권력과 지나친 갈등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속설이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 미래 권력인 대선후보들이 임기말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과 극도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가 대선 문턱에서 미끄러진 사람은 한둘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게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갈등 관계를 빚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입니다. 참여정부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 빅3 대선후보로 분류됐던 고건 전 총리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토 한 마디에 대선출마를 포기한 전력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입니다. 아무리 레임덕에 시달린다 해도 임기 5년을 마치는 2월 24일 밤 12시까지는 대통령 권력을 유지합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임기 도중 국회의 탄핵 시도가 있긴 했었지만 국민의강력한 반발 속에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87년 체제 성립 이후 임기 도중에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합니다. 국회 탄핵과정에서 한 때 여야 의원들이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촛불의 힘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모두가 “설마”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온다? 그녀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에 영남이라는 강력한 지역적 기반을 갖춘 보수세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더구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절대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는 30% 안팎의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까지 보유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는 모든 것을 뒤흔들었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이게 나라냐”고 분노하면서 “즉각 하야하라”고 외쳤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여러 번 반전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국면전환용으로 개헌을 꺼내들었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3차에 걸친 대국민담화 역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는지 자괴감이 든다”는 조롱 섞인 유행어만을 남겼습니다. ‘4월 퇴진·6월 조기대선’이라는 마지막 히든카드마저 통하지 않았습니다. 막강권력 박근혜는 스스로 무너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탄핵·파면 없었다면 12월 대선? 보수통합·단일화실패·정계개편 ‘최대 변수’
또 올해 북한의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도발이 수도 없이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12월에 대선이 치러졌을 경우 가장 피해자는 아무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입니다. 아울러 지난 5.9대선에서 보수는 홍준표 vs 유승민으로 분열됐지만 대선이 12월에 치러졌다면 어떤 식으로든 보수 단일후보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보수단일후보가 반기문, 황교안, 홍준표, 유승민, 남경필 그 누구였든지 간에 지난 5.9대선과 같은 참패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치적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보면 정치권의 합종연횡 과정을 거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반(反)문재인 단일후보가 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보수는 5.9 대선에서 국정농단과 대통령 파면이라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3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습니다. 문재인(41.08%) 안철수(21.41%) 홍준표(24.03%) 유승민(6.76%) 심상정(6.17%).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12월 대선에서 반(反)문재인 연합전선이 만들어졌을 경우 문재인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12월 20일에 대선이 치러졌다면 우리가 봤을 정치기사 제목들?
-보수, 反문재인 기치로 대통합 전격합의…한국·바른 내일 합당
-고공행진 文대세론 꺾이나? 北 핵·미사일 도발에 지지율 급락
-‘북핵정국 최대 수혜주’ 반기문, 지지율 급등하며 文대세론 추월
-대선 최대변수 ‘反문재인 단일후보’ 현실화? 與野, 정계개편론 솔솔
-진보진영 원로 “87년 대선패배 교훈 기억해야”文·安 단일화 촉구
-文·安 단일화협상 최종 결렬…보수단일후보 어부지리 승리 가능성?
-대선판 예측불허, 文·安·潘 3각 혼전양상 “누구도 승리 장담못해”
어떠십니까? 누군가는 기사 제목만 봐도 끔찍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현 정치상황이 기사 제목처럼 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면서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전신 정당인 새누리당 비박계가 동조하지 않았다면 애초 불가능한 구조였습니다. 망설이던 비박계를 압박한 것은 다름 아닌 주권자 국민들이었습니다. 촛불혁명은 그 어떤 상찬도 아깝지 않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를 지켜서 헌법을 위반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린 전후무후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우리가 12월 9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