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초당옥수수,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등 제철 채소를 활용한 전채 요리가 입맛을 돋운다. 송로버섯과 옥수수를 활용한 ‘아뮤즈 부쉬(amuse-bouche·한 입거리 음식), 은은한 코코넛 향이 느껴지는 파스타에는 셰프의 손맛이 녹아있다. 향긋한 3종 야생버섯 요리와 해초가 들어간 콘소메(맑은 수프) 등 고기 없이 채워지는 ‘가벼운 포만감’이 비건(채식주의자) 코스 요리의 매력이다.
| ▲농심 ‘포리스트 키친’ 디너 메뉴. (사진=백주아 기자) |
|
국내 유수의 식품회사들이 잇달아 비건 레스토랑을 내고 있다. 비건 열풍을 겨냥해 축적한 식물성 단백질·대체육 기술을 실제 식당에 적용해 실험 중인 것이다.
29일 찾은 서울 잠실 ‘포리스트 키친’에는 비건 코스 요리를 경험하러 온 고객들로 전체 좌석(34석)의 90%가 찼다. 식품회사
농심(004370)은 지난 25일 국내 파인 다이닝(고급 레스토랑) 최초로 비건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포리스트 키친을 오픈했다.
농심 국내 파인 다이닝 최초 비건 코스 요리 선봬 | ▲오픈 키친 형태로 운영되는 농심 포리스트 키친. (사진=백주아 기자) |
|
농심의 비건 식당은 프리미엄을 지향한다. 햄버거, 파스타 등 일반 비건 캐주얼 식당과 차별화해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비건식에 대한 편견을 깬다는 전략이다.
특히 농심은 대체육을 개발하며 축적한 기술력에 김태형 총괄 셰프가 미국 뉴욕 미슐랭 1·2스타 레스토랑에서 쌓은 노하우를 접목해 메뉴를 개발했다. 코스 첫 요리이자 레스토랑의 이름을 담은 ‘작은 숲’은 제철 채소를 이용한 아뮤즈 부쉬와 콩 커스터드, 콩꼬치로 구성됐다.
처음 경험하는 비건식에 호기심이 가는 이유는 요리에 담긴 정성 때문이다. 이날 저녁 코스 요리를 경험한 대구에서 온 결혼 1년차 이동기·변선영 부부는 “비건이라고 해서 야채 위주의 가벼운 음식일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정성스럽게 대접받은 느낌을 받았다”며 “평소에 먹던 식재료를 새롭게 먹을 수 있는 기회였고 비건 음식에 대한 생각이 바뀐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김태형 농심 포리스트 키친 총괄 셰프가 요리를 하고 있다. (사진=농심) |
|
김태형 총괄 셰프는 본인이 채식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트렌드를 읽고 비건식의 경쟁력을 일찌감치 깨닫게 됐다”며 “내 경험과 자사 대체육 제품을 결합해 여러 가지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코스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리스트 키친 메뉴는 제철 채소와 농심 대체육을 활용한 단일 코스요리로 점심 7개, 저녁은 10개 요리가 제공된다. 가격은 런치 5만5000원, 디너 7만7000원(와인 페어링 시 9만5000원)으로 책정됐다.
비건식의 대중화 캐주얼 다이닝 풀무원 ‘플랜튜드’ | ▲풀무원 ‘플랜튜드’ 식사 메뉴. 왼쪽부터 두부 페이퍼 라자냐, 플랜트 소이불고기 덮밥, 모듬 버섯 두부 강정. (사진=백주아 기자) |
|
같은 날 오후 방문한 서울 삼성동
풀무원(017810) ‘플랜튜드’도 비건식을 경험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인기 메뉴인 트러플 감태 화이트 떡볶이와 두부 카츠 채소 덮밥은 점심 시간 이후 재료가 전부 소진돼 맛 볼 수 없었다.
풀무원은 비건식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캐주얼 다이닝 형태로 식당을 냈다. 메뉴는 풀무원의 식물성 단백질과 대체육을 활용한 13종으로 구성했다. 전 메뉴가 100% 식물성 식재료로 ‘비건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누구나 맛있게 건강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플랜튜드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도 있지만 비건식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찾은 사람도 많다. 플랜튜드 총괄 매니저는 “평일 점심은 직장인과 일반인들로 식당이 가득 차고 오후 1시 30분까지는 꾸준히 대기가 있다. 성비로 치면 여성과 남성이 7대 3 정도”라며 “풀무원 대체육을 활용한 플랜트 소이 불고기 덮밥(1만1900원)이 가장 인기가 많고 식물성 단백질 대표 음식 두부를 활용한 두부 카츠 채소 덮밥(1만2900원), 두부 페이퍼 라자냐(1만5500원)도 인기 톱3 메뉴”라고 설명했다.
대치동에서 온 강모씨(33)는 “다이어트나 건강한 식단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비건 식사는 좋은 메뉴 구성인 것 같다”면서도 “원래 생각했던 콩고기보다 대체육의 질이 달라진 거 같지만 내 입맛에는 아직 소스를 입혀야 먹을만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 ▲풀무원은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물 지하 1층에 비건 레스토랑 플랜튜드를 선보였다. (사진=풀무원) |
|
대체육 활용 요리 호불호 여전 식감·맛 구현 숙제 식품업계의 비건 트렌드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에서 채식 인구는 지난 2008년 15만명에서 지난해 250만명으로 증가했다. MZ 세대의 가치 소비 트렌드가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계의 지속가능성 식품에 대한 연구 중 대체육의 경우 고기와 비슷한 맛과 식감을 내는 것은 숙제로 남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체육의 경우 고기와 비슷한 질감을 내기 위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며 “다양한 식자재를 더해 대중성을 확보는 하거나 콩고기 특유의 향을 잡기 위한 노력 등이 수반된다면 점차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