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진우기자] 지난 10월 20일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신용카드 회사들에 대한 혹평을 내놓으면서 증권가에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 애널리스트는 30페이지짜리 장문의 보고서에서
LG카드(032710)의 목표가로 당시 주가의 3분의1 수준인 5950원을 제시했다. 9000원대이던 외환카드도 3390원으로 깎아 내렸다. 리포트가 나오기 전날 LG카드의 주가는 1만7200원이었다.
LG카드를 불안한 시각으로 보는 애널리스트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2만원 전후의 목표가를 유지해왔고, 내년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주를 이루던 때라 이 보고서는 투자자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했다.
"목표가격에서 "1"자를 실수로 빼먹은 것 아니냐는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당시를 회고하는 주인공은 세종증권의 3년차 애널리스트 김욱래(31) 연구원이다.
은행업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 중에서는 경력이 제일 짧은, 비교적 신참 애널리스트다. 김 연구원은 당시 "당신이 그걸 확신할 수 있는냐"는 식으로 항의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전화를 받느라 꽤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LG카드와 외환카드의 주가는 그 이후 이 보고서가 제시한 목표주가를 향해 줄곧 내리막을 탔고 리포트가 나온지 한달 여 만에 LG카드는 5000원대로 떨어졌다. 한달여 만에 3분의1 토막이 나버린 주가를 미리 예언한 셈이 된 김 연구원은 다시 한 번 증권가의 화제가 됐다.
"카드업종, 아직 버블의 끝을 보지 못했다"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김 연구원이 2년여의 애널리스트 생활에서 처음으로 쓴 "매도" 보고서였다. 애널리스트들이 "매도"를 주장하는 보고서를 쓰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연구원은 작심하고 큰 사고를 친 셈이다.
"아무리봐도 쇼티지(자본부족)가 날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막연하게 내년에 경기가 좋아지면 나아질 것이라는 시각이 커지는 것이 우려스러웠습니다"
김 연구원의 "카드 거품론"은 비교적 명쾌하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나 론을 받는 계층이 소득규모를 기준으로 하위계층인데 내년에 경기가 풀린다고 이들의 소득이 갑자기 늘어날 개연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카드 업종에 대해 내년 1년은 더 고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관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야구로 비유하면 대형 "홈런"을 친 셈이지만, 김 연구원은 주변의 시각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듯 했다.
그는 특히 LG카드의 주가를 맞힌 족집게 애널리스트라는 부추김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애널리스트는 주가의 방향성에 대해 정교한 논리를 제시할 뿐이라고, 주가를 맞히는 것은 애널리스트의 목표는 아니라고.
김 연구원은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99년 세종증권에 입사했다. 애널리스트 업무는 지난 2001년부터 시작했다. 대부분 고참 애널리스트가 맡기 마련인 금융업종을 담당하고 있는 점에 대해 그는 "금융회사는 경제의 모든 부분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배울 점도 많고 깊은 분석력도 기를 수 있다"고 만족해한다.
김 연구원은 은행업종의 장기 전망은 매우 밝은 편이라고 전망했다. 사회가 점점 시스템화돼가고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구조로 변해갈 수록 은행의 수익성은 높아지고 안정화되기 마련이라는 논리다.
"외환위기때는 대기업들이 교훈을 얻었다면, 최근의 신용대란을 통해서는 개인들이 실패를 경험했고 교훈을 얻은 겁니다. 이렇게 경제주체들이 한 번 씩 경험한 쓰라림이 교훈으로 체화되면 사회 전체의 리스크 관리능력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이 되면 비슷한 "사고"를 치겠느냐는 물음에 "써야하는 상황이면 쓰겠지만 가능하면 안쓰고 싶다"며 빙그레 웃음으로 그간의 맘 고생을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