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토요일인 지난 24일 오전 2시 인천국제공항. 정규 항공편이 끊긴 시각이라 공항 로비와 입출국장이 고요했다. 하지만 유독 30번 탑승구만 사람이 붐볐다. 배낭과 가방을 든 260여명의 여행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오전 1시쯤부터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코트를 이불 삼아 의자에 누워 잠을 자거나 잡담을 나누거나 책을 보다가 3시30분쯤 탑승시간이 되자 일제히 줄을 섰다. 이들이 탄 비행기는 일본항공(JAL) 8838편. 토요일 새벽 일본 도쿄에 갔다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새벽에 귀국해 직장으로 출근하는 이른바 ‘주말 번개 여행족’을 위해 여행사들이 특별 항공편을 띄운 것이다.
◆ 10만원대 중국 여행 상품도 나와
환율 하락으로 해외여행 경비가 싸지자 30·40대 직장인들 사이에 ‘주말 번개 여행’ 붐이 일고 있다. 2004년만 해도 100엔이 1100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780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40만원을 웃돌던 도쿄행 왕복 항공료가 30만원대로 내려갔고, 3년 전만 해도 50만~70만원이던 주말 도쿄 상품이 최근엔 40만원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난 주말 도쿄에 다녀온 권지은(여·22)씨는 “엔화 가격이 워낙 떨어져 이젠 잘만 뒤지면 3만~4만원에 잠자리를 구할 수 있고, 3000원 정도면 도쿄에서 맛있는 덮밥을 사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2004년 1140원대에서 930원대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중국 여행의 경우 10만원대 상품이 나왔다. 1박3일로 19만9000원에 상하이에 다녀온 김하윤(26·웅진코웨이)씨는 “제주도 여행보다 싸게 해외에 다녀온 셈”이라고 말했다.
◆ 주말 해외 쇼핑객도 늘어
환율이 떨어지자 쇼핑을 주목적으로 하는 해외여행객도 많아지고 있다.
일본항공(JAL) 티케팅 담당 직원 김우영(32)씨는 “주말 도쿄행 고객의 10%는 짐을 부치지 않고 손가방 하나만 들고 나간다”며 “그런 고객들은 쇼핑만 하다 오는 손님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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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사들 즐거운 비명
일본, 중국, 홍콩, 동남아뿐 아니라 호주까지 넘나드는 주말 번개 여행족도 나오고 있다. 직장인 최수호(30)씨는 금요일 밤 인천공항을 떠나 토요일 오전 6시에 시드니에 도착한 후 1시간 단위로 촘촘하게 짠 일정을 소화했다. 일요일 저녁 7시 다시 비행기에 오른 최씨는 월요일 오전 6시에 인천공항에 내린 후 곧바로 출근했다.
◆ 여행사 횡포는 여전
하지만 여행상품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해외여행상품피해 상담건수는 2004년 2910건, 2005년 3251건에 이어 지난해 3607건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해외여행 소비자 피해 343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방적 계약 취소(50.1%), 일정·숙소 임의 변경(23.3%), 상해·질병(6.7%) 순으로 피해가 많았다.
공정위 소비자정보팀 관계자는 “여행상품 광고 중 작은 글씨로 다른 추가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여행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고 이를 보관해둬야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경우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