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사우디아라비아가 2034년 월드컵 개최를 사실상 확정 지었다. 스포츠 산업 육성을 위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노력이 성과를 냈다는 평가와 대형 스포츠 행사로 인권 탄압 등에 따른 부정적인 이미지를 감추려 한다는 우려가 엇갈린다.
|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아랍 클럽 챔피언스 컵 결승전을 참관하며 웃고 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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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국제축구연맹(FIFA·피파)는 2034 월드컵 개최 의향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날인 이날 사우디만이 유치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애초 사우디와 2034 월드컵 개최권을 두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됐던 호주는 유치 의사를 막판에 접었다. 사우디의 월드컵 유치가 확정되면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중동에서 열리는 두 번째 월드컵이 된다. 피파 측은 “피파 평의회가 승인한 유치 규정에 따라 피파 집행부는 철저히 유치·평가 절차를 진행할 것이며 (최종) 개최지는 2024년 4분기 피파 총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간 사우디는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주니오르를 자국 축구리그에 영입하는 데만 각각 시즌당 2억유로(약 2900억원), 1억 5000만유로(약 2100억원)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사우디 국부펀드 PIF가 지난 2년간 스포츠에 투자한 돈이 최소 63억달러(약 8조3000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석유 중심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문화·관광 등으로 경제를 다각화하려는 빈 살만 왕세자가 이 같은 투자를 주도했다. 특히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면 인프라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빈 살만 왕세자의 그간 개혁 성과를 국제 사회에 홍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우디는 이번 월드컵 유치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압둘아지즈 빈 투르키 알 파이살 사우디 체육부 장관은 “2034 월드컵 개최는 전 세계 스포츠 선도국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국가 변혁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몬 채드윅 프랑스 SKEMA 경영대학원 교수도 “(월드컵 개최로) 사우디는 국제사회 파리아(불가촉천민)에서 믿을 만하고 합리적인 구성원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다만 월드컵 개최가 여성·인권 탄압으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스포츠 워싱’에 악용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글로벌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의 밍키 워든은 “피파는 (월드컵 유치를 통해) 노동·언론의 자유, 시민사회 보호를 두고 (사우디와 협상할 수 있는) 지렛대를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피파는 카타르 월드컵 당시에도 카타르의 여성·성소수자 차별, 이주노동자 학대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포츠워싱 논란에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9월 미국 폭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스포츠워싱으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가 1% 늘어날 수 있다면 나는 스포츠워싱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